증권
그들만 알아듣는 기업 공시…일반투자자들은 `멘붕`
입력 2013-12-02 15:13 

# 30대 직장인 김준석씨는 이번 연말 성과금은 주식에 투자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작년처럼 괜히 송년회, 신년회 술값으로 탕진할 게 아니라 '재테크를 한 번 제대로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기업이 정보를 찾아보겠다며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접속한 순간, 준석씨는 '멘붕(어떤 상황을 받아드리지 못하고 넋이 나간 상태)' 상태가 됐다. 사업보고서를 아무리 정독해도 영어로 적힌 전문용어들 때문에 도대체 회사가 무슨 사업을 하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전문용어와 외래어로 뒤덮인 공시에 일반투자자들이 혀를 내두르고 있다. 공식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투자자료지만 내용이 너무 어려워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당사는 세계 최초로 2 GaN기판에서 성장한 Non-polar 양산에 성공하여 기존 LED대비 동일면적당 5배 이상 밝은 'nPola'품을 발표하였습니다. 세계 최고의 밝기인 500lm 밝기를 자랑하는 nPola는…"
디스플레이 업종에 속한 한 코스닥 상장사의 분기보고서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GaN기판'은 갈륨과 암모니아를 반응시켜 얻은 결정으로 만든 청색 발광 다이오드의 일종이다. 'Non-Polar'는 무극성, 즉 전기적 성질을 띠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알아들을 수 없는 수준이다.

해당 부분을 일반 투자자들에게 보여주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주식 투자에 입문한 지 얼마 안됐다는 이태웅(30)씨는 "주식을 시작하고 기업을 파악하기 위해 가장 먼저 찾는 게 공시인데 이렇게 쓰여 있으면 안보느니만 못하다"며 "투자자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술 중심 기업일수록 사업 내용을 쉽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전문용어에 대해서는 투자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석을 다는 등의 배려가 필요한 이유다.
회사가 소송 등 특별한 사건을 겪고 있을 때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한국거래소 공시규정에 따르면 법인에 대해 소송 등 절차가 제기·신청되면 투자자들에게 내용을 알릴 의무가 있다.
하지만 어려운 법률 용어를 해석하지 않고 그대로 공시하는 경우가 많아 투자자들은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투자자들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는 공시의 목적이 무색할 정도다.
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 20일 한 코스닥 상장사는 손해배상소송을 당했다. 이 업체는 이날 공시에 '반소피고(본소원고)는 반소원고(본소피고)에게 금 12억4570만원 및 이에 대한 이 사건 반소장 부본 송달일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각 비율에 대한 금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이 제기됐다고 알렸다.
내용은 12억4570만원의 손해배상금과 그에 대해 연 20% 금액을 소장을 받은 날부터 지급해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소원고, 반소피고, 반소장 부본 송달일, 금원 등 쉽게 쓸 수 있는 용어를 그대로 인용해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왜 소송이 제기됐는지 맥락도 적지 않아 사건을 정황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전문용어는 가능한 사용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지만 기준을 명확히 규정하기는 힘든 상태"라며 "사업보고서의 경우는 기업과 금감원 모두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정도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리 단어라도 공시 내용 중 일부를 지적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사항"이라며 "단순히 이해가 불편한 것이라면 조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잔디 기자 / 이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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