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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의 바스켓Q] “D-리그 드래프트…미팅만 하루 7시간씩”④
입력 2013-11-13 18:16 
▲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구단에 양해를 구하고 외도한 한국에서의 5일은 행복했다. 삼성에서 준비한 은퇴식 일정 때문이다. 사실 은퇴식 전날 밤 ‘절대 울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다. 난 실제로 울지 않았다. 기자회견에서 왜 울지 않았냐고 묻더라. 시즌 종료 후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 충분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마 지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은퇴식을 했다면 펑펑 울었을 것 같기도 하다.
솔직히 생각을 할 시간을 많이 가졌다. 가족들과 여행을 가서 선수 생활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면서 혼자 펑펑 울었다. 눈물이 정말 저절로 나오더라. 그러면서 마음의 정리를 했다. 마지막이 아닌 시작이니까. 영원히 농구판을 떠나는 날이 있다면 그땐 정말 눈물이 다시 날 것 같다.
서울 삼성 프랜차이즈 스타 이규섭의 은퇴식. 사진=KBL 제공
은퇴식 당일. 난 일찍 경기장에 도착해 삼성과 LG 선수들, 구단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안부도 물었다. 정말 고맙게도 (강)혁 형이 축하를 위해 와줬다. 우린 은퇴 후 생활에 대해 한참 대화를 나눴다. 형도 나도 지도자의 길을 잘 걷기를 기대하며.
막상 은퇴식이 시작하자 마음이 이상해졌다. 삼성에서 준비한 영상에서 부모님이 나오는데 정말 가슴이 뭉클해지다 못해 뜨거워져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여기서 울면 주체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꾹 참았다. 속으로 계속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를 되새겼다. 정말 지금까지 잘 키워주시고 항상 사랑으로 이끌어주신 부모님께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지금 이 글을 쓰면서 부모님 생각을 하니 갑자기 눈물이 계속 흐른다.)
마지막 코트를 돌 때 잠실에서 뛰었던 내 모든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내 머리속을 지나갔다. 관중들의 함성과 내가 잠실실내체육관 코트에서 뛰었던 순간들…. 코트를 돌기 직전 손으로 코트를 살짝 만졌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혼잣말로 말했다. 은퇴식은 내가 아닌 팬들을 위한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날 응원해준 모든 분들을 위한 이벤트라고 생각한다. 정말 감사드리고 사랑한다. 가족이 또 생각난다. 우리 가족도 나를 응원한 팬이었으니까. 항상 나를 가장 가까이서 이끌어준 아내와 내가 힘들때 힘과 열정을 준 두 아들에게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 미국에 함께 오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쉽다.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우리는 항상 같이 있으니까….”

▲ 하루 7시간 미팅이라니…
요즘은 미팅의 연속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는 미팅이 상상이 가나? 여긴 그렇게 한다. 생각하고 묻고 답하고 수정하고…. 감독부터 엄청나게 세부적으로 준비를 해서 브리핑을 시작한다. 그동안 몰랐던 감독, 코치님들의 고뇌를 알 것 같았다. 솔직히 농구 용어를 제외하고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코트에 나가 직접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갔다.

여기 시스템은 토의가 많다. 물론 절대적 권한은 감독님에게 있지만 코치들과 피드백을 꼭 한다. 코치들도 자신이 생각하는 장점과 우려되는 부분에 대해 계속 얘기를 나눈다. 공격과 수비, 시즌 훈련 등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를 반복하는 일상이다.
D-리그는 11월에 드래프트를 통해 선수가 구성된다. 그래서 예상 선수들을 대상으로 전술을 구상하고, 플랜 A, B 등을 대비책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선수 구성에 따라 조금씩 수정을 해나가는 작업을 한다.
사실상 산타크루즈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2군인 셈이다. 그래서 골든스테이트에 합류해 함께 훈련에 참가하기도 하는 것이다. 골든스테이트의 공‧수 패턴을 직접 파악해 연구하고 산타크루즈도 같은 시스템으로 훈련을 시키고 경기를 한다. D-리그의 첫 번째 역할이 선수들의 1군 콜업이기 때문에 최대한 그것에 초점을 맞춘 뒤 팀도 이겨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골든스테이트와 산타크루즈 간에 정보 공유는 절대 없다. 개방을 하지만 그냥 주는 법은 없다. 문화 차이인 것 같다. 우리는 스스로 연구하고 알아내야 한다. 어쨌든 배우는 나에게는 더 좋은 기회인 것은 분명하다.

NBA 하부리그 D-리그 드래프트 자료 수집을 하고 있는 이규섭 산타크루즈 어시스턴트 코치. 사진=이규섭 제공
▲ NBA도 기본 훈련에 충실하다
내 인생의 소중한 추억을 만든 뒤 곧바로 미국으로 돌아왔다. 짧은 시간 동안 정신없이 보낸 기억밖에 없다. 미국 도착 후 곧바로 다음 날부터 출근 도장을 찍었다. 당장 드래프트였다. 준비할 일이 태산이었다. 그래도 가장 궁금했던 드래프트을 준비 과정부터 함께 때문에 호기심이 넘쳤다.
드래프트 준비를 위해 스태프도 2명이 보강됐다. 나한테도 50명 정도의 할당 선수 명단이 주어졌다. 이름, 나이, 출신학교, 포지션 등이 적힌 명단이었다. 이 선수들의 평가 보고를 해야 한다. 당황스러웠다. 어쩌겠나. 일단 무식하게 덤볐다.
일단 50명의 선수들 최근 기록을 모조리 복사했다. 1명당 3장 분량의 기록들이 나왔다. 그리고 포지션 분류 작업을 했다. 나에게 주어진 포지션이 가드와 스몰포워드였다. 주로 대학 졸업자가 많았고 간혹 유럽과 아시아에서 용병으로 뛴 선수들도 있었다. 형광펜으로 주요 기록들을 체크하며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영상 자료가 있는 선수들을 찾아 일일이 체크했다.
내 나름대로 잘하는 순으로 A, B 두 그룹으로 나눴다. 그리고 다시 잘하는 그룹에서 다시 마지막 시즌 출전한 모든 경기 기록지를 다 살펴보고 누가 꾸준하게 활약을 했는지 동영상을 참고해 a,b,c로 분류했다. 마감 날짜에 맞춰 감독님께 보고서를 제출했다. 수고했다”는 짧은 말과 함께 또 다른 과제가 주어졌다. 또 다른 선수들을 찾아보란다. 끝나지 않는 일의 연속이었다.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다가 신선한 일이 생겼다. 스테판 커리(골든스테이트)의 친동생인 명문 듀크대 출신의 유망주 세스 커리가 체육관에 나타났다. 여기선 커리 형제의 인기가 많다. 커리는 이번 시즌 D-리그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선수 혼자 훈련을 한다고? 체육관으로 가 직접 훈련을 지켜보기로 했다.
훈련 시작과 함께 볼 핸들링부터 드리블 등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 슈팅 훈련으로 마무리했다. 1시간30분 정도 기본기 훈련만 했다. 여기서는 모든 훈련에 앞서 기본기 훈련을 꼭 한다. 가장 강조하는 것이 ‘기본에 충실해라이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들이 모인 NBA도 유망주들이 도전을 하는 D-리그도 기본기 훈련에 충실하다. 또 코치들도 아주 세심하게 요구하고 가르친다. 여기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나를 한번 더 돌아보는 계기도 됐다. 사실 난 프로 데뷔 후에 어느 순간부터 기본기 훈련에 소흘했다. 아마 지금 KBL에서 뛰는 모든 프로 선수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술과 기술 모든 것이 다 중요하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훈련이 기본기다. 나도 KBL 선수들도 그런 것을 잊고 있다. 커리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면서 후배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드리블링, 핸들링, 슈팅, 피봇 플레이 같은 아주 기본적인 훈련을 절대 소홀히 하지 말아라”고 알려주고 싶다.
커리를 본 뒤 다시 드래프트 자료 수집에 매진했다. 검색하고 분석하고 이메일과 전화로 주고받는 일의 반복. 특정 선수의 출신학교에 연락해 그에 대한 정보도 주고 받는다. 그리고 드래프트 전날 사무실에서 최종 미팅을 가졌다. 그런데 이날 골든스테이트 스태프들도 도움을 주기 위해 자리를 함께 했다. 무려 16명이 다시 회의를 하기 시작해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미팅을 갖고 9시까지 훈련을 했다.
드디어 드래프트 당일. 방법도 독특했다. 구단 사무실 벽에 스크린을 만든 뒤 17개 팀이 인터넷과 유선전화기를 이용해 화상 드래프트로 진행했다. 나라가 워낙 크니 전체가 다 모이기 어려워 이런 방법을 택하는 것 같다. 나에게는 신기한 일이기만 했다. 드래프트는 무려 4시간 동안 진행됐다. 선수를 뽑는 시간에도 전화기는 쉬지 않고 바쁘게 돌아갔다. 드래프트를 하는 동안 트레이드도 시도하고 순번을 바꾸는 제안을 하기도 하는 등 다이내믹했다. 재미는 있었지만, 해당 선수의 에이전트와 출전 의사를 묻는 등 까다로운 절차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나로서는 설레기만 한 일이었다. 과연 어떤 선수들을 가르치게 될까. NBA를 향한 선수들의 도전과 열정을 기대하면서 나도 이제부터 시작이다.
[전 삼성 농구선수/현 산타크루즈 어시스턴트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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