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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형제애’ 장민국, 형 떠난 눈물로 코트에 서다
입력 2013-11-07 06:04  | 수정 2013-11-08 13:28
[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프로농구 개막을 한 달여 앞둔 지난 9월3일 밤. 갑작스런 비보가 전해졌다. 힘들 때마다 항상 의지하던 친형이 심장마비로 돌연사를 당했다는 감당할 수 없는 소식이었다. 누구보다 건강하고 밝았던 형이었기에 동생은 충격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날도 다시 찾아온 통증에 재활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때였다.
전주 KCC의 ‘뜨거운 남자 장민국(24)의 숨겨진 슬픈 사연이다.
장민국은 배구 스타 장윤창(55)경기대 교수의 둘째 아들이다. 그리고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첫째 아들 장대한이 있었다. 두 아들은 아버지와 달리 배구가 아닌 농구 인생을 걸었다. 형이 먼저 걸은 길을 동생이 뒤따랐다.
전주 KCC 중고신인 장민국이 지난 6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3-14 프로농구 원주 동부와의 경기에서 15득점 맹활약으로 팀의 연장 승리를 이끈 뒤 뜨거운 형제애로 감동 사연을 전했다. 사진=KBL 제공
둘은 단대부고에서 함께 농구공을 잡고 미래를 꿈꿨던 형제였다. 당시 둘을 지켜본 사람들은 정말 사이 좋은 형제로 소문이 났을 정도로 서로 아꼈던 사이”라고 전했다. 이후 두 살 터울의 형이 먼저 성균관대 농구부로 진학했다.

숨은 사연이 또 있다. 사실 장민국은 형보다 나은 아우였다. 199cm의 신장에 탁월한 운동능력을 갖춘 장민국은 유망주로 손꼽혔다. 반면 191cm의 형은 동생에 비해 신체조건과 농구 실력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형의 대학 진학 뒤에는 농구계의 오랜 조건부 관행이 있었다. 장민국도 2년 뒤 형을 따라 성균관대에 입학하기로 약속을 했던 것.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연세대 농구부에 대한 꿈을 품고 있던 장민국은 연세대의 러브콜을 받으며 아버지의 만류에도 성균관대가 아닌 연세대로 진학을 결정했다. 그때 최종 선택의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바로 형이었다. 마음고생이 심했던 장민국을 향해 던진 너가 가고 싶은 학교를 가라”는 형의 말 한 마디였다.
장민국이 연세대로 간 뒤 형의 농구인생은 바뀌었다. 약속이 틀어지면서 형은 더 이상 농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형은 동생을 원망하지 않았다. 농구를 접은 뒤에도 프로골퍼의 꿈을 키웠다. 형은 바쁜 시간을 쪼개 연세대 경기가 있는 날이면 거의 빠지지 않고 동생을 응원하기 위해 체육관을 찾아 든든한 지원군을 자처했다.
장민국은 어렸을 때부터 심성이 착해 정신적으로 약한 편이었다. 거친 몸싸움이 힘들어 나약한 모습을 보일 때도 많았다. 그때마다 언제나 옆에 있는 형에게 의지했고, 형이 정신적 지주였다.
지난해 KCC에 입단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장민국은 지난 시즌 데뷔 첫 해 발바닥 피로골절로 수술대에 오르며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꿈에 그리던 프로 데뷔 시즌을 코트가 아닌 병원과 재활센터에서 보냈다. 오랜 재활의 연속이었다. 신인에게는 잔인한 시간이었다. 이대로 농구 인생이 끝날 수도 있는 최악의 데뷔 시즌. 장민국이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옆에서 용기를 북돋아준 형의 존재였다.
형이 사고를 당한 그날 이후, 장민국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나약했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KCC 구단 관계자는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달라진 것 같다. 예전과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다행히 웃음도 찾고 운동에 더 악착같이 매달리더라. 성공적으로 재활을 이겨낸 것도 다 형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독기를 품은 장민국을 눈여겨 본 것은 허재(48) KCC 감독이었다. 허 감독은 장민국의 탁월한 신체조건과 깔끔한 슛폼을 보고 눈도장을 찍었다. 재활을 이겨내는 모습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허 감독은 올 시즌에는 장민국이 돌아오기 때문에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리고 장민국은 코트에 우뚝 섰다.
하늘에서 보고 있을 형을 위한 세리머니였을까. 80-80으로 맞선 4쿼터 종료 4초 전 결정적인 3점슛을 터뜨린 뒤 환호하고 있는 장민국. 사진=KBL 제공
장민국은 지난달 12일 인천 전자랜드와의 개막전에서 기다리던 데뷔전을 치렀다. 무려 프로 데뷔 20개월 만의 무대였다. 그리고 13일 서울 SK전에서 15득점을 폭발하며 팀의 2연승을 이끌었다. 지난 6일 원주 동부전에서도 프로 처음으로 화끈한 투핸드 덩크슛을 작렬했고, 결정적인 3점슛을 터뜨리는 등 15득점으로 맹활약하며 팀의 4연승을 견인했다.
그러나 그의 곁에는 더 이상 형이 없었다. 형 앞에서 당당한 프로선수로 성장한 동생을 보여주고 싶었던 장민국은 동부전을 마친 뒤 방송 인터뷰를 통해 형을 향한 편지를 썼다.
장민국은 형이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잘하면 항상 연락도 오고 그랬는데, SK전 끝나고 뭔가 그런 게 없으니까 허전하더라. 그때 생각이 많이 나면서 슬럼프에 빠지려고 하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정신 차리게 마음을 잡아주신 것 같다”라며 괴로웠던 순간을 떠올렸다.
이어 장민국은 하늘에서 보고 있을 형에게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우리 형인데 지금 없어서 많이 힘들지만…”이라며 말을 잇지 못하다가, 형 몫까지 잘하고 있으니까 하늘에서 걱정하지 말고, 항상 열심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하늘에서 잘 있었으면 좋겠어, 형. 사랑해”라며 복받치는 감정을 애써 억눌렀다.
이날 장민국은 나오는 눈물을 끝까지 눌러 참았다. 동생을 위해 자신의 농구 인생을 포기하면서 헌신했던 형을 위한 뜨거운 눈물을 아직은 보이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형에 대한 사무치는 미안함과 고마움에 가슴으로 울었다.
[min@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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