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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인터뷰] 봉동이장으로 돌아온 최강희 “꿈에서 산다” 上
입력 2013-10-10 14:13 
[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은 최강희 감독은 전북의 사령탑으로 컴백한 뒤 일체 개별 인터뷰를 진행하지 않았다. 말도 탈도 많았던 탓이다. 사심 없이 전한 말들이 사람들의 입을 건너면서 곡해되거나 불필요한 말들이 붙었고 이는 의도치 않은 화와 탈을 만들어냈다. 평소 언론과의 스스럼없는 대화를 즐기는 최강희 감독도 제법 상처가 컸다.
최강희 감독은 입을 닫았다. 대표팀의 감독이 바뀌어 새롭고 바쁘게 탄력을 받아야하는 시점에서 전임 감독의 왈가왈부는 득 될 것 없다는 이유였고 자신도 서둘러 전북을 정상궤도에 올려놔야하는 때에 괜스레 과거 이야기에 허비할 생각도 없었다. 그랬던 최강희 감독이 전북의 새로운 클럽하우스 오픈이었던 지난 4일 MK스포츠와 마주했다.
그로부터 꽤 시간이 지난 뒤 최강희 감독과의 만남을 공개하는 것은, 하필 그 무렵 ‘말들이 다시 떠돌았던 까닭이다. 한참 어린 제자와 엮인 문제, 그것도 불미스러운 일을 자꾸 들추는 통에 최강희 감독은 또 며칠 괴로웠다. 때문에 대화 공개를 조금 미뤘다. 그와 나눈 좋은 이야기들에 괜스레 다른 말들을 끼어들까봐 부러 숨을 죽였다.
최강희 감독은 어느덧 대표팀 시절이 아득한 옛일이 된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전북에 집중하는 지금이 그만큼 편하다는 방증이다. 사진= 스포츠공감 제공
집으로 돌아온 최강희 아득한 기억 속 대표팀”
전북 완주군 봉동읍 율소리에 위치한 새로운 클럽하우스의 감독실에서 만난 최강희 감독은 스스로 대표팀에 대한 이야기부터 정리했다. 이것으로 깨끗한 과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느껴졌다. 같은 마음으로, 파란만장한 최강희 감독의 2013년 중 대표팀 페이지는 이것으로 정리가 됐으면 싶다.

최 감독은 전북에 돌아오니 ‘수고했다고 인사하는 사람들은 100명에 2명뿐이었다. 대부분 ‘상처 많았겠다 혹은 ‘고생이 많았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를 걱정했구나 싶었다. 그런데 난 상처까지는 아니었다”면서 분명 돌아갈 곳(전북)이 있었고 나를 기다려주는 팬들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힘들지 않았다”는 말을 전했다.
애초부터 돌아갈 때와 장소를 알고 시작한 출발이었다. 그러나 최강희 감독 체제로 브라질월드컵을 가야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진지하게 나돌기도 했다. 최 감독은 내 마음에 그런 가능성은 늘 제로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심지어 가장 친한 사람들도 네가 전북에 다시 돌아가서 얻을 게 뭐가 있느냐는 말을 하더라”는 말로 당시 분위기를 설명했다. 하지만 최강희 감독은 확고했다. 이유는 딱 하나였다.
최강희 감독은 고집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내겐 그냥 약속이다. 내뱉은 약속은 지켜야하는 사람이다. 출세도 돈도 명예도 다 좋지만, 개인적으로 조그마한 약속이 지켜지고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당연한 결정이었음을 밝혔다. 최강희 감독에게 ‘전북이란 그런 존재였고, 그렇게 둥지에 돌아오니 비로소 편안해졌다고 한다.
그는 일부러 대표팀 시절을 잊고 전북에 집중하자고 마음을 먹기는 했지만 그렇게 빨리 멀어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옛일이 된 것 같다. 내 상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날 환영해주니까 지난 일들은 순식간에 지나갔다”고 회상했다. 표정에 후련함이 함께 스쳤다. 지금 최강희 감독의 마음은 편안하다. 그는, 집에 와 있다.
심지어 클럽하우스 옆에 묫자리를 내고 싶다는 말까지 전했다. 최강희 감독과 전북의 관계는 밖에서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사진= MK스포츠 DB
봉동이장, 봉동에서 뼈를 묻겠다
최강희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애칭은 역시 ‘봉동이장이다. ‘재활공장장도 좋고 ‘강희대제도 자랑스럽지만 최 감독은 옆집 아저씨 같은 외모부터 지도자로서의 지향점 그리고 팬들과의 관계도까지 확실한 이미지를 구축한 캐릭터 ‘봉동이장을 가장 사랑한다.
최강희 감독은 봉동으로 돌아와서 선수들과 함께 섞이고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이것이 꿈이었으니까, 꿈꿔왔던 것을 다시 하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꿈 속에서 살고 있다”라며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전북에 대한 애정이기도 하고, 대표팀 시절이 그만큼 힘들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만큼 고되고 힘들었다. 하지만 잃은 것만 있었던 시간은 아니다.
그는 가끔 대표팀에 가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가정은 해봤다. 하지만 선택한 이후 후회는 없었다.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집중했다. 비록 마무리는 아쉽고 한국 축구는 나로 인해 아팠을 수 있으나 대표팀을 다녀온 것이 내 지도자 인생에서 실패만은 아니었다”면서 내 소임이었던 월드컵 8회 연속 진출을 성공시켰고 이제 이후는 홍(명보) 감독이 맡게 됐으니 그것으로 끝맺음을 했으면 싶다. 축구는 시간 속에서 발전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후배 홍 감독을 응원하면서 난 이제 전북에 모든 포커스를 맞추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최강희 감독은 지난 1년 반 동안의 대표팀 생활이 전북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더 애절하게 만들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나도 팬들도 서로의 소중함을 알았다. 사실 팀을 오래 이끌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데 좋은 자극이 된 것 같다”는 말로 대표팀에서의 시간이 좋은 약이 됐다고 표현했다. 부담스러운 감투를 버리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이장 완장을 다시 찬 최강희 감독. 그는 다시 전북과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최 감독은 2005년 여름 부임할 당시 전북은 환경도 팀도 좋지 않았다. 내가 만들어야할 팀이었고,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감독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크게 달라질 수 있는 팀이었기에 더 열심히 했고 오히려 홀가분하게 일했다”면서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런데 또 일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 대충 만들어 달라 했던 클럽하우스를 이렇게 과분하게 지어줬으니 부담스런 족쇄를 차게 됐다”며 손사래를 쳤다. 느릿느릿 평온한 표정이었으나 마음은 이미 의욕으로 가득 찼다.
이야기 도중 최강희 감독은 창밖을 바라보며 클럽하우스 옆에 묫자리를 내고 묻혔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전했다. 이어 인간은 태어나면 언젠가 죽어야하고, 감독은 언젠가는 잘린다는 말이 있다. 죽을 때까지 전북에 있겠다는 것은 분명 내 욕심이겠으나, 꿈을 꿀 수는 있을 것”이라는 말로 마냥 속없는 농담이 아님을 덧붙였다. 밖에서 생각하는 것 이상의 애정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단언컨대 최강희 감독은 팀이 자신을 버리지 않는 한 떠나지 못할 것이라 했다.
마냥 내 집이라 안주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런 생각도 품을 수가 없다. 최강희 감독은 감독은 늘 자기를 바늘로 찔러야하고 벼랑 끝에서 승부를 펼쳐야한다. 애절함이 없다면 좋은 승부사가 될 수 없고, 팀을 이끌 수도 없다”고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 애절함이 있었기에 최강희 감독이 복귀한 전북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과연 감독 한 명 바뀌었을 뿐인데 이런 변화가 가능할까 싶을 정도다. 10월19일 열리는 FA컵 결승에 올라있고 정규리그에서도 포항과 승점이 같은(56점) 2위까지 비상했다. 이런 분위기라면 ‘시즌 더블도 가능한 시나리오다. 올해는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던 전북이 리그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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