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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이후 ‘제 2의 장종훈·김현수’를 위하여
입력 2013-08-27 06:04 
[매경닷컴 MK스포츠 김원익 기자] 미래의 동량들을 새 일원으로 맞이하는 축제가 끝났다. 한국야구는 이들과 함께, 이날 기회를 얻지 못한 제 2의 장종훈과 김현수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을까.
2013 신인 2차 지명회의가 성공리에 끝났다. 26일 서울 르네상스 서울호텔에서 열린 2014 프로야구 신인 2차 지명회의에서 10개 구단은 단 1번의 지명포기 없이 모두 지명을 행사, 105명의 새 밀알을 거둬들였다. 10구단 KT위즈의 창단으로 더 많은 선수들이 기회를 얻었다. 경사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날 눈물을 흘려야 했던 이들이 더 많다.
▲ 바늘구멍, 그보다 더 좁은 야구 인생길
105명의 선수들은 프로가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이자 희박한 확률을 통과한 행운아다. 이날 신인지명회의에는 고교, 대학 졸업 예정 선수 및 상무, 경찰야구단 소속 선수 등 총 720명이 지원했으나 좁은 확률을 통과한 이들은 10명 중 2명 꼴도 되지 않는다. 유년시절부터 십수년간 야구를 해왔던 이들 중 14.6%만이 자격을 얻은 셈이다.
물론 이것이 남은 615명의 마지막 기회는 아니다. 고교 졸업 선수들은 대학에 진학하거나, 각 구단들의 공개 트라이아웃, 스카우트들의 선택, 지도자의 추천을 통해 신고 선수로 입단하거나 혹은 해외로 진출해 야구를 계속 해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

한국 야구는 제 2의 장종훈과 김현수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2014 프로야구 신인 2차 지명회의에 뽑힌 영광의 얼굴들. 사진=옥영화 기자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것 역시 바늘구멍처럼 좁은 길이다. 현재 전국 대학 야구부 숫자는 전국 고교 53개 팀보다 더 적은 40개 팀이다. 그러나 일정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학교는 이보다 훨씬 적다. 거기에 소위 말하는 야구 명문대학교의 신입생들의 숫자는 제한돼 있다. 경쟁력 있는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면 다시 프로 지명을 목표로 할만한 경기력을 유지하거나, 향상시키기 어렵다. 이런 명문학교에 입학하는 것 역시 프로 지명만큼이나 쉽지 않다. 해외 구단 입단은 더욱 길이 좁다.
마지막 방법이 있다. 바로 이른바 연습생으로 불리는 신고선수로 프로에 입단하는 것이다. 신고선수는 KBO(한국야구위원회)에 정식으로 등록된 선수가 아닌 구단에 선수로 신고만 되어 있는 일종의 연습생들이다. 계약금 없이 구단에 입단해, 2군 경기에만 출전을 할 수 있다. 각 팀은 매년 10여명의 신고선수를 선수단에 등록한다. 기존 선수단에서 방출된 선수들의 재취업이나, 2군 선수의 신고 선수 전환, 프로 경험자들의 등록 등을 고려하면 신인들이 이 기회를 얻는 것도 쉽지 않다. 거기에 군 문제도 걸려있다.
그래서 프로에 지명 받지 못한 많은 선수들은 대학교 진학이나 군입대를 하고, 대다수는 야구선수로서의 삶을 포기한다. 한국 야구가 이들을 다시 수용할 수 있을 만큼의 토양을 갖추고 있지 않기에 그렇다.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쏟아부었던 야구를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에 가깝다.
잘 알려진대로 장종훈 한화 이글스 타격코치는 ‘연습생 신화의 주인공이다. 1986년 세광고 졸업이후 프로와 대학교의 지명을 받지 못해, 연봉 300만원을 받고 빙그레 이글스(한화의 전신)에 입단했다. 이후 프로야구 최초의 40홈런 시대를 열며 통산 340홈런의 기록을 남긴 강타자로 활약했다.
현 프로야구 최고의 교타자이자 타격기계로 꼽히는 김현수 역시 신고선수 출신이다. 신일고 재학 시절 2005년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표팀 멤버로 뽑힐 만큼 타격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당시 발이 느리고 수비력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신인지명을 받지 못했다. 몇몇 대학교의 입학제의를 거절하고 2006년 두산의 신고선수로 입단한 이후 프로에서 2번의 최다안타·1번의 타격왕, 통산 타율 3할1푼8리를 기록하며 최고의 타자로 활약 중이다.
이들의 성공은 26일 돌아서서 눈물을 흘린, 또 현재도 빛을 받지 못하고 음지에서 묵묵히 야구를 하고 있는 많은 이들의 희망이자 롤모델이다. 하지만 동시에 관중 700만 시대를 활짝 열고 최고 프로스포츠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한국 야구의 슬픈 이면이기도 하다. 장종훈, 김현수가 신고선수의 마지막 기회를 잡고 야구를 계속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한국야구의 중요한 자산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잃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우리는 다른 가능성을 눈앞에서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레벨의 마이너리그와 독립리그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이나, 역시 풍부한 구단 내부 육성 시스템과 독립리그, 준프로 수준의 사회인 야구 인구를 자랑하는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 각 구단 60~80명의 1,2,3군 총 선수단 인원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인원만이 아니라 시설과 인력을 포함한 인프라의 질 면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2000년대에 들어서 많은 구단들이 육성의 중요성을 이해하면서 투자를 늘려가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최근까지 2군 전용 경기장이 없었거나, 여전히 3군 선수단을 운영하지 않는 구단도 있는 것이 한국식 육성의 인식이다.
이날 신인지명회의에 참가한 고교, 대학 졸업 예정 선수 및상무, 경찰야구단 소속 선수 등 총 720명 중 14.6%인 105명만이 이날 지명의 기쁨을 누렸다. 사진=옥영화 기자

▲ 뿌리없는 한국야구, 대안은 없나
대안은 정녕 없을까. 현 시점에서 각 구단들에게 선수단 운영 규모를 늘리라고 요청하기는 쉽지 않다. 수익구조가 아직 모기업의 지원 없이 경영이 가능한 자생수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기업들은 대승적인 차원의 문제보다는 당장의 경제성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국내 유일의 독립구단인 고양 원더스는 2012년부터 올해까지 2년간 총 11명의 프로선수를 배출했다. 어디에서도 야구를 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선수들의 마지막 보루였던 장소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야신 김성근 감독의 존재와 선수들의 의지와 노력, 허민 구단주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가능했던 일이다. 동시에 독립리그가 한국야구를 살 찌울 수 있는 또 하나의 해법이라는 희망의 증거이기도 했다.
유일한 독립구단이 아닌 리그의 탄생은, 준 실업선수의 탄생이라는 새로운 길도 제시할 수 있다. 움직임도 있다.
10구단 KT 위즈의 연고지인 수원시와 경기도는 신생 구단 선정 당시, 경기도 내 최소 3~6개팀의 독립구단을 창설해 독립리그를 출범시키겠다는 공략을 내걸었다. 하지만 독립리그 창설 과정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경기도 역시 최근 전국 지자체들이 스포츠 종목에 지원을 줄이고 있는 ‘불편한 흐름을 따르고 있는 모양새다. 경기도와 도체육회는 도내 31개 시·군 비인기 종목 아마추어 유망주 영입 및 육성을 위해 지원하던 예산을 점진적으로 줄여가고 있다.
거기에 더해 독립리그 야구단 창단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경기도 독립리그 창단과 관련해 해박한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진통이 많다. 경기도 역시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독립리그 창설 테스크포스팀을 구성, 도내 다수의 기업, 지자체들과 접촉을 했다. 하지만 수익성, 경기장 제공, 세제 지원, 비용문제 등에 속시원한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하며 난항을 겪고 있다. 다양한 사업 연계 경험을 자신했던 초기와는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특별한 모델인 고양 원더스의 막대한 운영규모를 따르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의 진단이다. 대신 10~15억원 정도의 연간 예산규모로도 충분히 독립야구단을 창설할 수 있으나, 경기도는 기업들과 지자체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방송 중계와 독립리그 수요에 대한 우려는 적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야구장 인프라가 없다는 것이 최대 걸림돌. 거기에 각 지자체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다는 것도 큰 문제. 지자체와 기업은 경제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경기도내 결정권자들의 결단과 약속이행의 의지가 있다면 빠르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 많다. 하지만 특유의 꽉 막힌 행정에 가로막혀 있다. 이대로라면 독립리그 창설은 이대로는 공약(空約)이 될 우려가 크다.
뿌리 없는 나무에서 언제까지 잘 익은 열매만을 수확할 수 있을까. 끝내 이름이 불려지지 않았던 저들은 한국야구의 빈약한 토양에서 자란 가능성 풍부한 씨앗이다. 새로운 일원을 맞이하는 축제가 끝난 이후, 한국야구의 건강한 성장에 대한 그들과 야구를 위하여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one@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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