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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인터뷰] 김뢰하 “‘품바’ 통해 이미지 변신의 목마름 채웠죠”
입력 2013-08-07 09:37 
[MBN스타 두정아 기자] 상대를 매섭게 노려보던 축 쳐진 눈빛이 어느덧 하회탈처럼 순하게 웃는다. ‘악역 전문 배우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다. 허름한 옷차림으로 깡통을 들고 구걸을 하다 촌철살인의 입담을 펼쳐 보이기도 한다.
연극 ‘품바를 통해 180도 연기 변신에 도전한 배우 김뢰하를 서울 대학로 상상아트홀에서 만났다. 어린 시절, 동네의 시장 어귀에서 한 번쯤 마주쳤을 법한 걸인의 남루한 차림이 꽤나 잘 어울린다는 말은 과연 칭찬일까.
사진=이선화 기자
1인극은 처음인데, 그 자체가 도전이고 모험이에요. 기대도 컸지만 걱정도 많았죠. 막연히 ‘할 수 있겠지 싶었는데, 막상 덤벼보니 생각보다 힘들어요. 정말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절실히 느끼지만, 성취된 부분도 커서 여러모로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드라마 ‘빛과 그림자와 ‘전우치 ‘공주의 남자, 영화 ‘달콤한 인생 등 지난 20년간 드라마, 영화를 통해 개성 넘치는 연기를 선보였던 김뢰하는 이번 작품이 데뷔 이래 가장 큰 도전이다.
1981년 초연 이후 32년간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웃음으로 풀어낸 ‘품바는 한국을 대표하는 연극으로, 구전민요인 각설이타령을 기초로 마당극 양식과 무대극 양식을 결합하여 만든 독특한 형태의 모노드라마이다.

일제 강점기와 광복 이후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전국을 떠돌며 살다간 천장근이라는 각설이패 대장의 일대기를 통해 민족적 자존감과 베푸는 삶, 그리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희상자들을 추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품이 주는 무게감 그리고 90분간 혼자 무대를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이 그를 자극했다.
악역의 이미지가 강해 반대되는 이미지를 하고 싶었어요. 강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많이 해봤으니 서민과 가까운 뭔가 친근한 이미지에 목이 말랐죠. 강렬한 눈빛을 지워가는 과정이 가장 먼저 필요했어요. 불쌍하고 까불거리는 눈빛부터 푸는 것이 과제였죠.”
1인극인 만큼 대사의 양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시험보기 전 암기하듯이 열심히 외웠다”는 그는 배우로서 대사량이 큰 압박으로 느껴진 것은 처음”이라고 말한다. 대사뿐 아니라, 직접 무대에서 트럼펫의 연주까지 선보인다.
연기 생활 20년 만에 색다른 도전을 하는 기분이에요. 좀 더 젊었더라면 열정과 패기를 더 펼쳐 보일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어요.(웃음) 그래도 뭔가를 이겨내는 노하우가 생긴달까요.”
단국대학교 도예과를 졸업한 그가 배우가 된 사연은 독특하다. 배우는 선택받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을 때, 우연히 연극반 연습실을 지나가게 된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당시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매우 시끄럽던 때였어요. 그러한 어수선한 분위기에 어떤 젊은이들이 밤늦게까지 불을 켜놓고 집중하며 뭔가를 하더라고요. ‘연극반이었죠. 저렇게 무언가를 치열하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그래서 당장 입단을 했죠.”
공연에 쓸 소품으로 필요하다며 연극반 선배들은 그에게 입단 조건으로 도자기 몇 점을 요구했다. 연극에 대한 눈을 뜨게 되니, 어느 새 4년이 흘러갔다. 그는 지금이야 천직이라고 생각하지만, 가끔씩은 내가 연기한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진다”며 웃어보였다.
오로지 열정과 치열함이 부러워 발을 들였던 배우라는 삶의 터전에서 그는 20년째 에너지를 불태우고 있다.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늘 새로운 도전을 꿈꾼다. 이번 ‘품바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나 신인 시절 겪는 오디션 낙방의 쓰라림에도 그는 단 한번도 배우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절망감이 들 때는 따로 있었다. ‘넘을 수 없는 벽이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선배들”의 열연만이 꿈 많던 김뢰하의 밤잠을 설치게 했다.
내 연기의 자양분이요? ‘결핍이요. 내게 없는 무언가를 위해 바둥거리며 살고 있어요. 그러한 결핍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내 연기의 행위나 충동의 근원이니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사진=이선화 기자
지난 2006년 연극을 함께 하던 동료 배우와 결혼해 마흔이 넘은 나이로 뒤늦게 새 신랑이 된 그는 요즘 네 살배기 아들의 재롱을 보는 행복에 푹 빠져있다. 지인들로부터 ‘아들 바보로 불린다. 공연장에 와서 아빠를 응원하기도 하는 의젓한 아들이다.
삶의 지향점도 ‘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란다. 그는 아이가 커서 자기 사고를 하게 되고 세상 바라보는 눈이 생겼을 때 ‘우리 아빠가 이렇게 살아 왔구나 하고 귀감이 되길 바라고 있다”고 했다.
극중이지만 ‘거지라는 가장 낮은 위치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까. 그는 가장 낮은 사람이기 때문에 베풀지 않고 나누지 않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맘껏 할 수 있는 것 같다”며 작품을 하면서 짧은 인생, 베풀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작은 소극장에 불이 켜졌다. 리허설 시간이 다가오자, 그가 빈 깡통을 들며 말했다. 거지를 통해 그 시대의 진짜 모습을 만나보는 거죠.” 잠시 후면 진지하던 그의 표정이 이내 하회탈 같은 미소로 바뀔 것이다.
오랜 전통을 지닌 공연이라 관객 연령층이 높지만, 저는 젊은이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의 역사가 어떻게 이뤄졌고, 사회 정치적으로 어떻게 흘러갔는가에 대한 줄기를 만날 수 있으니까요. 그거야 말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요소 아닐까요.”
두정아 기자 dudu0811@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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