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M머니 출발증권시장 (오전 8시~10시)
■ 진행 : 김나래 앵커
■ 출연 : 장남식 M머니 기자
【 앵커멘트 】
한국콜마 윤동한 회장은?
【 기자 】
1990년 화장품 전문 기업인 한국콜마를 설립한 윤동한 회장은 1947년 대구 출생으로 1970년 영남대 경영학과 졸업했고, 1974년 서울대 경영대학원 수료, 1970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한 뒤 4년 만에 퇴사했고, 1974년 대웅제약으로 회사를 옮겼다. 이후 90년 한국콜마를 설립했고 현재까지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윤동한 회장은 높은 연봉이 보장되던 첫 직장 농협중앙회를 4년 만에 그만두고 당시 중소기업이던 대웅제약으로 옮기면서부터 창업을 꿈꿔왔다고 한다. 생산·영업·관리 등 회사 주요 파트를 두루 거치면서 다방면의 경험을 쌓은 것도 창업을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부사장 자리를 박차고, 16년간의 대웅제약 생활을 마무리한 윤 회장은 1990년 충남 연기군에 작은 사무실을 차리고 직원 3명과 함께 화장품 사업을 시작했다. 국내 최대(매출액 기준) 화장품 ODM 기업 한국콜마는 이렇게 시작됐다.
【 앵커멘트 】
윤동한 회장의 경영스타일은?
【 기자 】
윤동한 회장은 원칙을 중시하고, 무엇보다 품질을 우선시하는 품질경영으로 회사를 성장시켜 왔다.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자면, 한국콜마는 창립 초기 우여곡절 끝에 일본에서 콜마라는 브랜드를 들여왔지만 2년 가까이 거의 고객이 없어서 전기료를 못내 단전 통보를 받았다. 어려운 시절 꽤 큰 주문이 들어왔는데, 고객사는 '무자료 거래'를 요구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흔히 있던 일이었고 또 다른 고객사는 주문을 주는 대가로 뒷돈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윤 회장은 모두 이를 모두 거절했다. 원칙을 중시하는 그의 경영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난 일화이다.
이후 윤 회장은 한 중견기업 회장을 찾아가 계약금을 요구했다. 갑을관계가 명확하던 당시 화장품 업계에서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는데, 납품에 실패하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보증서까지 써서 가져온 윤 회장을 보고 그 중견기업은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계약금을 지급했다. 이 일을 계기로 한국콜마의 자금난은 숨통이 틔었고 사업은 점차 성장가도를 달렸다.
이때부터 윤 회장의 관심은 오로지 품질에만 쏠렸는데, 자체 연구개발(R&D) 역량을 강화했고 품질관리 인력도 대폭 보강하는 등 품질경영에 힘썼다.
【 앵커멘트 】
윤회장의 성과와 올해 목표는?
【 기자 】
윤 회장의 품질경영 덕에 한국콜마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속에서도 연평균 20%의 매출 증가를 꾸준히 달성했다.
지난해 매출은 비상장 계열사까지 합쳐 5,500억 원을 기록했고, 지난 2007년 중국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는데, 많은 한국 기업들이 상하이로 진출하던 것과는 달리 한국콜마는 베이징에서 둥지를 틀었다.
사업을 하기 전에 중국이라는 국가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는 게 윤 회장의 판단이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중국 공장을 완공한 한국콜마는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매출 100억 원을 돌파하며 정상궤도에 올랐다. 올해는 중국시장에서 200억 원, 내년에는 400억 원을 매출 목표로 잡고 있다.
윤 회장은 "중국시장에서도 한국콜마의 품질이 소문나면서 신제품 발표회에 전국 각지의 고객사가 몰려온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국콜마는 베이징 공장을 현재의 5배 규모로 증설할 계획이며 광저우 공장을 짓기 위한 절차도 진행 중이다.
■ 진행 : 김나래 앵커
■ 출연 : 장남식 M머니 기자
【 앵커멘트 】
한국콜마 윤동한 회장은?
【 기자 】
1990년 화장품 전문 기업인 한국콜마를 설립한 윤동한 회장은 1947년 대구 출생으로 1970년 영남대 경영학과 졸업했고, 1974년 서울대 경영대학원 수료, 1970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한 뒤 4년 만에 퇴사했고, 1974년 대웅제약으로 회사를 옮겼다. 이후 90년 한국콜마를 설립했고 현재까지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윤동한 회장은 높은 연봉이 보장되던 첫 직장 농협중앙회를 4년 만에 그만두고 당시 중소기업이던 대웅제약으로 옮기면서부터 창업을 꿈꿔왔다고 한다. 생산·영업·관리 등 회사 주요 파트를 두루 거치면서 다방면의 경험을 쌓은 것도 창업을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부사장 자리를 박차고, 16년간의 대웅제약 생활을 마무리한 윤 회장은 1990년 충남 연기군에 작은 사무실을 차리고 직원 3명과 함께 화장품 사업을 시작했다. 국내 최대(매출액 기준) 화장품 ODM 기업 한국콜마는 이렇게 시작됐다.
【 앵커멘트 】
윤동한 회장의 경영스타일은?
【 기자 】
윤동한 회장은 원칙을 중시하고, 무엇보다 품질을 우선시하는 품질경영으로 회사를 성장시켜 왔다.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자면, 한국콜마는 창립 초기 우여곡절 끝에 일본에서 콜마라는 브랜드를 들여왔지만 2년 가까이 거의 고객이 없어서 전기료를 못내 단전 통보를 받았다. 어려운 시절 꽤 큰 주문이 들어왔는데, 고객사는 '무자료 거래'를 요구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흔히 있던 일이었고 또 다른 고객사는 주문을 주는 대가로 뒷돈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윤 회장은 모두 이를 모두 거절했다. 원칙을 중시하는 그의 경영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난 일화이다.
이후 윤 회장은 한 중견기업 회장을 찾아가 계약금을 요구했다. 갑을관계가 명확하던 당시 화장품 업계에서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는데, 납품에 실패하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보증서까지 써서 가져온 윤 회장을 보고 그 중견기업은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계약금을 지급했다. 이 일을 계기로 한국콜마의 자금난은 숨통이 틔었고 사업은 점차 성장가도를 달렸다.
이때부터 윤 회장의 관심은 오로지 품질에만 쏠렸는데, 자체 연구개발(R&D) 역량을 강화했고 품질관리 인력도 대폭 보강하는 등 품질경영에 힘썼다.
【 앵커멘트 】
윤회장의 성과와 올해 목표는?
【 기자 】
윤 회장의 품질경영 덕에 한국콜마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속에서도 연평균 20%의 매출 증가를 꾸준히 달성했다.
지난해 매출은 비상장 계열사까지 합쳐 5,500억 원을 기록했고, 지난 2007년 중국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는데, 많은 한국 기업들이 상하이로 진출하던 것과는 달리 한국콜마는 베이징에서 둥지를 틀었다.
사업을 하기 전에 중국이라는 국가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는 게 윤 회장의 판단이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중국 공장을 완공한 한국콜마는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매출 100억 원을 돌파하며 정상궤도에 올랐다. 올해는 중국시장에서 200억 원, 내년에는 400억 원을 매출 목표로 잡고 있다.
윤 회장은 "중국시장에서도 한국콜마의 품질이 소문나면서 신제품 발표회에 전국 각지의 고객사가 몰려온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국콜마는 베이징 공장을 현재의 5배 규모로 증설할 계획이며 광저우 공장을 짓기 위한 절차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