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전역이 가까운 군인들은 흔히 ‘보인다는 표현을 쓴다. 다시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갈 때가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표현이다. 남자들 입장에서는 일종의 분수령 같은 때다. 사회로 돌아가면 본격적으로 시작될 성인 남성으로서의 삶을 앞두고 기대로 부푸는 한편 치열한 생존 경쟁에 대한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 설레고도 걱정되는 때다.
오는 9월28일 민간인이 되는 경찰청 축구단의 염기훈은 서서히 ‘보이는 시점인 ‘말년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그 역시 일반인들처럼 걱정과 설렘이 공존하고 있는 때다.
제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염기훈이 소중한 기회를 잡았다. 홍명보호 1기 명단에 합류했다. 사회가 보이자 태극마크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사진= MK스포츠 DB |
그가 말한 ‘돌아갈 곳은 원 소속팀 수원삼성이다. 시즌이 막바지로 향하는 10월 무렵이면 다시 푸른 유니폼을 입고 K리그 클래식 무대를 누비는 왼발의 스페셜리스트를 다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에, 붉은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먼저 보게 될 것 같다.
염기훈이 제대를 두어 달 앞두고 미리 큰 선물을 받았다. 오는 20일부터 국내에서 열리는 동아시안컵에 출전할 23명의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을 이끌던 지난 2012년 5월30일 스페인과의 평가전 이후 1년 여 만의 재발탁이다.
홍명보 신임 국가대표팀 감독의 첫 번째 항해라는 점에서 이번에 승선한 인원은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 비단 염기훈 만의 일이기는 하지만, 염기훈은 더 특별하다. 1983년생 염기훈은 23명 인원 중 최고참이다. 홍명보 감독이 고참과 신예라는 구분은 나에게 의미가 없다”라고 했으나 당장보다는 1년 뒤의 경쟁력을 보겠다”는 말과 함께 젊은 선수들에게 주로 기회를 준 ‘홍심을 감안한다면 염기훈의 발탁은 이례적이다.
가뜩이나 염기훈은 아직 군인 신분이고 2부리그에서 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홍명보 감독은 2부리그에서 뛰고 있지만 염기훈의 경기를 2~3경기 지켜봤다. 몸 상태가 좋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염기훈의 풍부한 경험이 팀의 밸런스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발로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대표팀 첫 승선자도 6명이고 A매치 경력이 10경기도 안 되는 이들이 수두룩한 홍명보호 1기 명단에서 A매치 46회의 염기훈은 정성룡 골키퍼(50회)와 함께 베테랑에 속한다. 나이로는 염기훈을 제외하면 1985년생들이 맏형이다. 서른 살을 넘긴 이도 염기훈 뿐이다. 홍명보 감독의 말처럼 중심을 잡아줄 리더도 필요했다.
하지만 단순히 나이와 경험의 많음이 선발의 기준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근 염기훈의 페이스는 좋다. 가장 가까운 리그 경기였던 지난 6일 수원FC와의 K리그 챌린지 경기에서도 1골1도움으로 공격을 주도하며 3-2 승리를 견인했다. 이 같은 맹활약에 프로축구연맹은 염기훈을 주간 MVP로 선정한 바 있다.
무엇보다 그의 왼발은 대표팀에 꼭 필요한 옵션이다. 전문 키커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좋지 않은 흐름 속에서 데드볼을 전담할 수 있는 염기훈의 왼발은 매력적인 카드다. 최강희 전임 감독도 마땅한 키커가 없어 고민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홍명보 감독이 분명 염두했을 발탁이다.
염기훈 입장에서는 아주 중요한 기회를 잡은 셈이다. 브라질월드컵을 향한 경쟁이 원점에서 시작되는 시점에서 사회가 보이는 염기훈이 다시 대표팀과 태극마크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많은 나이는 아니나 또 적은 나이도 아니다. 그의 선수 커리어에 월드컵 무대가 또 있다면, 브라질이 마지막이 될 확률이 크다. 설렘과 기대로 가득할 염기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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