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히딩크, 제자 홍명보에게 ‘답’이 아닌 ‘길’을 제시하다
입력 2013-06-26 06:55 

[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좋은 스승이란 고민에 빠진 제자에게 바로 답을 가르쳐주는 것보다 스스로 답을 찾게끔 길을 안내해주는 등대 같은 존재여야 한다. 물고기 한 마리 잡아다 주는 것보다 낚시하는 법을 일러주는 것이 현명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것이 진짜 스승이다. 중대한 갈림길에서 고심하던 제자 홍명보에게 스승 히딩크 감독이 그러했다.
새로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홍명보 감독이 25일 파주NFC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적인 첫 발을 내디뎠다. 그 자리에서 홍 감독은 누군가는 내가 축구협회의 강압에 떠밀려서 억지로 지휘봉을 잡았다고 하는데, 난 아기가 아니다”는 강한 어조와 함께 스스로의 신념에 의한 수락이었음을 설명했다.
좋은 스승이란 고민에 빠진 제자에게 바로 답을 가르쳐주는 것보다 스스로 답을 찾게끔 길을 안내해주는 등대 같은 존재여야 한다. 홍명보 감독에게 히딩크 감독이 그러했다. 사진= MK스포츠 DB
그 정도의 판단능력은 가지고 있는 홍명보 감독이고 분명 심사숙고를 통해 본인이 내린 결단이다. 물론, 주위에서 도움을 준 사람은 있었을 것이다. 특히 히딩크 감독의 충고는 특별했다. 스승의 의미심장한 조언이 결국 홍명보 감독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다.
홍명보 감독은 지난 런던올림픽을 끝으로 축구인생에서 쉽게 찾아오지 않는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있었다. 나의 스승이신 히딩크 감독의 배려로 5개월 정도 안지에서 코칭 수업을 받았는데, 그 시간이 나에게는 너무도 훌륭한 시간이었다면서 축구도, 인생도 많이 배웠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을 찾았다”는 말로 뜻 깊은 시간을 보냈음을 전했다.

축구도 배우고 인생도 배웠던 그 시간의 막바지에 홍명보 감독은 ‘국가대표팀 감독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잡아야할지 놓아야할지에 대한 답을 찾았다는 고백도 전했다. 스승이 이끌어준 길에서 답을 찾았다.
홍명보 감독은 내가 만약 한국대표팀 감독이 된다면 당신이 수석코치로 함께 하고 싶다는 애정 어린 농담까지 전했을 정도다. 자신의 일처럼 기쁠 것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는 일화를 전해주었다. 외부의 짐작 이상으로 둘의 관계가 깊다는 방증이다. 단순히 기쁨만 함께 나눈 것이 아니다. 결국 스승이 길도 안내해주었다.
홍 감독은 히딩크 감독님이 만약 감독 제안이 들어오면 내 주변의 모든 상황들을 냄비에 넣고서 끓여보라고 하시더라. 끓는 냄비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온다면, 튀어나오는 무언가가 부담스럽거나 마음에 걸리면 절대 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셨다”면서 실제로 축구협회의 제안이 들어왔을 때 히딩크 감독의 말처럼 내 주변의 모든 것을 넣고 끓여봤다. 그런데 아무 것도 나오지 않더라. 그래서 수락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짧지만 많은 것을 내포한 에피소드였다. 자신을 버리고 대승적인 사명감으로 잡아야하는 국가대표팀 지휘봉이기에 조그마한 걸림돌이라도 있다면 포기하라는 냉정한 충고였다.
고민하던 홍명보 감독은 스승의 충고를 바로 실행했고, 아무런 사적인 얽매임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홀가분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앞길이 창창한 홍명보 감독이 도대체 왜 ‘독이든 성배를 잡았을까 싶었던 의구심에 대한 답이 나왔다.
홍명보 감독은 좋았을 때보다 안 좋았을 때를 잘 활용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는 말로 외려 어려움이 자신을 이 길로 이끌었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승부사다운 도전정신이었다. 승부사의 승부욕이 끓기까지 히딩크 감독의 조언이 컸다. 감독직 제안을 수락해라 혹은 거절해라라는 답이 아닌, 제자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한 스승의 힘이 컸다.
[lastuncle@maekyung.com]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