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임성일의 맥] 문제는 만명이 아니라 만명이 본 내용이다
입력 2013-06-23 09:31 

텅 빈 경기장에서 펼쳐진 K리그 올스타전을 두고 말들이 많다. 대부분이 지적이고 그 지적의 방향은 죄다 프로축구연맹을 향하고 있다. 무리수가 많았다는 목소리다. 결과가 좋지 않으니 판을 마련한 주최 측에 비난의 화살이 향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사실 억울할 법도 하다.
목소리들이 주장하는 ‘무리수는 크게 2가지다. 하나는 팬들이 경기장을 찾기 힘든 금요일에 올스타전을 열었다는 것이다. TV 방송에 목숨을 거느라 현장을 등한시했고 때문에 1만1,458명이라는 초라한 관중 동원에 원인을 제공했다는 답답함이다.
평일에 경기가 열린 것, 유럽파를 불러들인 것이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1만명이 지켜본 부실한 내용이다. 사진= MK스포츠 DB
K리그 올스타전이라는 타이틀과는 어울리지 않게 해외파를 부른 것도 문제였다고 한다. 구자철 기성용 이청용 윤석영이 팀 챌린지 소속으로 출전한 것을 짚은 것이다. 그들이 K리그 출신인 것은 맞으나 그들의 이름값에 기대 ‘K리그 올스타전이라는 순도를 떨어뜨렸다는 목소리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팬들이 경기장을 찾기에는 주중보다는 주말이 용이한 게 사실이다. 지금 당장 K리그에서 뛰지 않고 있는 유럽파들을 초청한 것은 주객이 전도되게 하는 우를 범할 수 있는 카드였다. 하지만,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역대급 잔치로 평가되는 지난해 올스타전과 비교해보자.

2002월드컵 10주년을 기념해 ‘팀 2002와 ‘팀 2012의 대결로 펼쳐졌던 지난해 올스타전에는 3만7,155명이라는 구름관중이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 경기가 열린 날은 7월5일, 목요일이었다. 그때도 TV 방송 스케줄과 경기장 대여 문제 등의 이유로 주중에 올스타전이 열렸다. 심지어 폭우도 쏟아졌다. 주말이 아닌 주중에 올스타전이 열려 팬들이 경기장을 찾는 것을 방해했다는 ‘목소리들의 주장대로라면, 지난해에도 썰렁했어야한다.
‘K리그의 순도를 따지자면 지난해는 더더욱 비판을 받았어야한다. 그러나 K리그가 왜 국가대표팀의 발자취를 기념하는 이벤트를 마련했느냐는 지적은 없었다. 히딩크 감독과 박지성은 K리그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이들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다시금 포옹 세리머니를 펼쳤을 때 탐탁지 않게 지켜본 이들은 없었다. 모두가 환호했다. 다 결과론적인 지적이라는 뜻이다.
2013년 K리그 올스타전은 분명 아쉬움이 많은 잔치였다. 월드컵 최종예선의 결과로 인해 국내 축구계 분위기가 크게 냉랭해졌고 여기에 국가대표팀 차기 사령탑 선임, 박지성의 결혼발표, 김연아의 아이스쇼 등 핑계를 댈 수 있는 이슈들이 많았다.
복합적인 일들과 함께 2013년 K리그 올스타전은 실패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프로연맹은 그들 나름 열심히 뛰었다. 뛰는 방법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많이 뛴 그들에게도 격려의 박수가 필요하다. 적어도 왜 금요일에 경기를 열었느냐, 왜 해외파를 불렀느냐 등 결과에 따라서는 잘했다고 칭찬해줄 이유로 지적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올해 K리그 올스타전의 문제는 사실 1만명의 관중에 그쳤다는 것이 아니라 1만명이 본 내용에 있다. 충성스러운 축구팬 1만명이 지켜본 영양가도 맛도 없는 내용이 문제다. 과연 그들이 가치 있는 금요일 밤을 보냈는지 의심스럽다. 이 책임은 밋밋한 내용을 만든 선수들도 함께 지어야한다.
비어있는 5만 좌석을 보고 아쉬워만했지 과연 1만석을 채워준 팬들에게는 무엇을 선물했는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사진= MK스포츠 DB
설렁설렁 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각오와 함께 여느 올스타전보다는 진지한 자세로 임했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이벤트성 경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기는 어렵다. 당장 주말부터 정규리그가 재개되는 상황에서 행여 부상이라도 당하면 곤란한 일이다. 경기 자체만으로 풍성함을 만들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외적 볼거리가 필요했는데, 밋밋했다.
진지한 자세로 임하는 것과 쇼맨십을 보여주는 것은 다른 개념의 문제다. 하지만 이벤트성 경기의 미덕인 선수들의 ‘색다른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경기 중 넉살 좋게 장난을 치거나 평소 경기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화려한 개인기를 과감하게 구사하는 선수도 없었다. 심지어, 올스타전의 백미인 약속된 골 세리머니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구자철과 김재성 그리고 기성용의 ‘결혼식 세리머니가 아니었다면 더 초라했을 일이다.
경기 후 팀 클래식을 이끈 최용수 감독은 진정한 갑은 팬이다. 연맹도 구단도 지도자도 선수들도 팬들에게 얼마나 격이 높은 서비스를 제공해야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적어도 이번 올스타전은 격이 높은 서비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프로연맹이 선수들의 플레이까지 간섭할 수는 없는 법이다. 세리머니를 준비하자고 같이 머리를 맞댈 수도 없고 이런 쇼를 보여주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프로연맹의 고민과 노력이 30주년이라는 중요한 이정표에 미치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선수들과 선수들을 이끈 지도자들도 책임을 같이 지어야한다는 뜻이다.
1만명이 주위 한두 명에게만 좋은 이야기를 전해도 이듬해에는 3~4만명이 경기장을 찾을 수 있다. 반면 실망하고 돌아가면 3~4천명으로 줄어들을 수도 있다. 지난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은 1만명이 되돌아가 지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했을지 생각하면 얼굴이 뜨거워진다. 비어있는 5만 좌석을 보고 아쉬워만했지 과연 1만석을 채워준 팬들에게는 무엇을 선물했는지, 관련 있는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할 일이다.
[MK스포츠 축구팀장 lastuncle@maekyung.com]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