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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 ‘소금’ 이동국, 레바논전의 키를 쥐다
입력 2013-06-04 10:22  | 수정 2013-06-04 10:31

[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이동국의 어깨에는 늘 무거운 짐이 놓여있었다. 최전방 스트라이커로서 골을 넣어야한다는 부담감, 스쿼드 내 최고참으로서 후배들을 이끌어야한다는 중압감이 시종일관 이동국을 따라붙었다. 여기에 최강희 감독의 편애를 받는다는 불필요한 오해까지 그를 괴롭혔다. 상대에 앞서 먼저 극복해야할 과제들이었다.
브라질행을 결정지을, 대한민국 축구의 월드컵 본선 8회 연속진출의 성패를 결정지을 최종예선 마지막 3연전에서도 이동국은 비슷한 부담을 지고 경기에 나서야한다. 많은 이들의 시선이 다시금 이동국을 따라붙고 있다. 그래서 ‘빛이 되기보다는 ‘소금이 되고자하는 본인의 마음가짐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이동국이 5일 새벽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열리는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6차전의 선봉장으로 나선다. 최강희 감독은 김신욱 손흥민 지동원 등 스쿼드 내 다양한 공격수들의 효과적인 배치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다 결국 이동국 원톱으로 정리한 분위기다. 상대의 강한 압박으로 인해 공격수들의 움직임이 극히 제한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최강희 감독은 역시 이동국의 노련함에 신뢰를 보내고 있다.
중책이 다시 이동국에게 떨어졌다. 승점은 기본이요 승리가 꼭 필요한 레바논전이기 때문에 골을 뽑아줘야 할 공격수들의 책임감은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미 적잖은 팬들은 최강희 감독의 선택에 기다렸다는 듯 왈가왈부하고 있다. 이동국은 불가피하게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또 놓였다.

이런 상황에게 이동국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주인공이 아닌 조연의 역할이다. 아마 충분히, 최강희 감독과 이동국 사이에 교감이 있었을 부분이다. 스스로 축포를 터뜨리면 금상첨화겠으나 꼭 본인이 골을 넣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은 팀이 이기는 것이 최우선이고,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동국이다. 따라서 이동국이 철저하게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레바논전 성패의 중요한 키다.
일단 큰 부담 하나를 덜었다. 지금껏 최강희호 출범 후 거의 모든 경기에서 스쿼드의 최고참이었던 이동국이지만 이번에는 든든한 ‘형님이 뒤를 받치고 있다. 오랜 지기인 선배 김남일이 합류하면서 이동국은 비로소 홀가분한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다.
3년 만에 대표팀에 합류한 김남일은 이동국이 가장 좋아하더라.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짐을 모두 나보러 가져가라고 하더라”는 둘의 대화를 전하며 웃음을 보였다. 이제는 어느 정도 초연해질 연륜이 쌓인 이동국이지만 알게 모르게 심적 압박이 강했다는 방증이다. 죄다 자신을 비빌 언덕으로 여기는 것과 자신도 기댈 곳이 있다는 것은 큰 차이다. 플레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뜻이다.
이제 홀가분한 플레이어 이동국에게 필요한 것은 ‘희생이다. 실상 낯선 과제는 아니다. 그가 최근 1~2년 사이 소속팀 전북현대에서 펼치고 있는 그 플레이가 대표팀에서 나와야한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레바논전 승리의 문을 보다 수월하게 열 수 있다.
레바논이 까다로운 것은 그네들이 가지고 있는 객관적인 전력 때문이 아니다. 가진 것 ‘이외의 것들이 부담스럽다. 촘촘하게 내려설 수비진, 땅은 파이고 잔디는 잡초 같은 그라운드 환경 그리고 살벌하기까지 한 주변 분위기까지 괴로운 조건들이 많다. A조 최약체로 꼽히는 레바논이 자신들의 안방에서는 가진 것 이상의 힘을 발휘했던 것은, 레바논 원정길에 오른 상대들이 가진 것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이유가 크다.
때문에 이동국이다. 현재 최강희호에서 이동국만큼 질식수비에 대한 경험이 많은 공격수는 없다. A매치 경험과 전북에서의 ACL을 통해 중동의 그라운드 안팎에 대한 경험도 풍부하다. 이동국의 A매치 출전은 96회에 이른다. 상황과 상대에 따른 대처능력의 노하우를 펼쳐야한다.
좁은 공간에서 수비를 등지고 공을 받은 뒤 스스로 돌아서는 동작이나 동료를 이용하는 움직임은 누구와 견줘도 비교우위를 점한다. 수비수들의 체력을 소진시켜 혹 자신과 교체될 다른 공격수에게 득을 주든, 자신에게 견제가 집중될 때 이근호나 이청용이나 김보경 등에게 찬스를 내주든 이동국이 해줄 역할이 적잖다. 2선이나 측면으로 빠졌을 때 따라붙을 수비로 인해 전방에 생길 공간도 대표팀이 노려야할 포인트다.
요컨대 이동국은 빛보다는 소금이어야 한다. 물론 이는, 지금껏 최강희호에서 이동국에 해왔던 역할이기도하다. 일반적으로는 이동국이 골을 넣지 못한 것만 보였겠으나 이동국이 조연을 자처하면서 생긴 팀의 이득이 크다. 추천하는 관전 포인트이기도 하다.
최전방 공격수들은 아무래도 ‘빛의 역할에 가깝다. 그리고 이동국은 많은 시간 ‘빛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금 역할에 보다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 역할에 충실했을 때 브라질행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lastuncle@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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