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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일의 맥] 김남일의 ‘행동’, 고목나무에 꽃 피우다
입력 2013-05-17 18:08 

말은 쉽다. 행동은 어렵다. 말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것이 가능한 이들은 매력적이다. 어떤 분야든, 그런 매력을 지닌 이가 실력을 동반하면 빛나는 가치로 이어지게 마련이고 자연스레 그 가치를 필요로 하거나 원하는 사람들의 부름을 받게 된다.
2002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터프가이 김남일은 매력이 넘치는 존재다. 선수 김남일도, 인간 김남일도 매력적이다. 김남일이 내뿜는 매력의 뿌리는 ‘당당한 행동이다. 필드 안에서건 밖에서건 마찬가지다.
사실 2002월드컵 전후로 김남일이 ‘신드롬급 반향을 일으켰던 이유 중에는 거침없는 입담도 톡톡히 한몫을 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듯한 그의 발언은 종종 주위를 당혹케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밉지 않았다. 아니, 매력이 철철 넘쳤다. 허울뿐인 허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입만 살지는 않았다. 필드에서 보여주는 그의 플레이(능력)가 곧 알맹이였고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과 당당한 발언 등은 포장지일 뿐이었다.
그런 매력과 함께 김남일은 2000년대 시작과 함께 근 10년간 대한민국 대표팀의 부름을 받았다. 2002월드컵을 시작해 2006년 독일월드컵을 거쳐 2010년 남아공월드컵까지 태극마크를 달고 뛴 그의 A매치 이력은 97회에 이르렀다. 간판 스타였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터프가이고 진공청소기일 것 같던 김남일도 시간과 맞서는 것은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늘 대표팀 중원에는 그가 있었고 그 중에 또 많은 시간은 팔뚝에 주장을 상징하는 완장이 채워져 있던 김남일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내리막을 걸었다. 그게 자연의 순리다. 하지만 현재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표현의 수정이 불가피하다. 내리막을 걷는 듯했던 김남일은 다시 오르막을 걷는 분위기다. 순리를 거스르고 있다.
김남일이 더 이상 인연이 없을 것 같았던 국가대표팀에 재승선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이후 3년 만의 복귀다. 16일 대표팀 명단을 발표하던 최강희 국가대표팀 감독은 선수를 선발할 때는 편견이 없어야한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김남일은 K리그 클래식에서 좋은 활약을 꾸준히 보이고 있다”면서 내가 그에게 기대하는 것은, 경기 외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경기력 자체”라는 말로 그를 뽑은 이유는 실력이라고 단호하게 설명했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 김남일이 보여주고 있는 플레이를 보고 있자면 감탄이 나올 정도다. 소싯적, 그야말로 상대를 빨아들이던 터프함은 줄었다. 하지만 풍부한 경험과 욕심을 내려놓은 여유로 경기의 맥을 짚는 노련한 플레이는 그를 다시 한 번 전성기로 이끄는 분위기다. 축적된 경험이 그냥 발휘됐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여전히 누구보다 열심히 행동한다.
인천유나이티드 김봉길 감독은 남일이는 사실 내가 지시할 게 없다. 알아서 너무 잘한다. 전체 훈련도, 개인 훈련도 후배들보다 시간을 더 투자한다”면서 후배들이 남일이와 함께 있다는 자체로 많을 것을 얻을 것”이라는 말로 그의 성실함을 설명한 바 있다.
지난해 김남일이 인천에 입단했을 때, 과거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선수단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 역할을 해줄 것이란 기대가 컸다. 그가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김남일은 과묵했다. 한참 어린 후배들에게 별다른 지시도, 조언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이유가 무엇인지.
내가 할 일은, 그저 더 열심히 하는 것뿐이다. 입으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보다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후배들의 마음을 더 움직인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필드에서든 훈련장에서든 후배들이 보고 들으라고 입 대신 몸으로 말하고 있다.”
지난해 극구 고사했던 주장완장을 차면서 올해 김남일의 행동은 더 치열해졌다. 책임감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주장직을 수락했을 때 그는 한숨을 내쉬면서 내가 나를 잘 알아서 그렇다. 나 하나 챙기기도 바쁜 나이인데 이젠 전체를 생각해야한다. 작년보다 곱절로 움직여야한다”는 각오를 전한 바 있다. 이런 게 김남일 스타일이다.
2002월드컵 당시 대회가 끝나면 나이트에 가고 싶다”는 등의 통통 튀는 어록을 남긴 김남일은, 사실 누구보다 진지하게 축구를 대하는 선수다. 그런 성실함과 묵묵함이 있기에 펄펄 날던 때에서 10년이 지난 지금도 국가의 부름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대표팀 발탁이 결정된 16일 김남일은 MK스포츠와의 전화통화에서 대표팀에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 상상은 했으나 이것이 정말 현실이 될 줄은 나도 몰랐다”며 웃었다. 간절히 원하고 노력하면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미 2002년에 느꼈던 김남일이 2013년에 다시금 ‘명제의 참을 확인하고 있다. 이어 그는 대표팀에 첫 발탁될 때보다 더 설레고 긴장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터프한 김남일도 이런 면이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에 대한 답은 글머리의 문장을 다시 정리하면 된다. 김남일이 대표팀의 부름을 받은 것은 그의 가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남일의 가치란 실력을 동반한 그의 매력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 매력은, 필드에서 보여주고 있는 경기력에서 느껴진다. 결국 ‘김남일의 행동이 고목나무에 꽃을 피게 했다.
설레는 재입성을 앞둔 김남일의 각오는 특별할 게 없다. 그는 소집 때까지 시간이 좀 있으니까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가 대표팀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해볼 것”이라는 뜻을 전했다. 국내무대 컴백 후 인천에서 그랬듯, 말 대신 몸으로 보여주겠다는 입장이다. 역시 김남일의 가장 큰 매력은 ‘행동이다.
고목나무에 꽃이 피지 않는 것은 물과 기운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김남일을 고목나무라고 표현하는 것은 좀 미안하지만, 끊임없이 행동하면서 물과 기운을 공급했기에 지금의 꽃이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더 이상 호시절은 없을 것 같던 그가 다시 꽃을 피웠다. 심지어 탐스럽고 풍성한 꽃이 피었다.
귀감이 되는 선수다. 그는 이 나이(36살) 먹고도 대표팀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란 말을 했다. 후배들이 보고 배워야할 부분들이 많은 선수다. 말은 쉽다. 행동은 어렵다. 행동하는 김남일의 매력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MK스포츠 축구팀장 lastuncle@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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