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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셰임’, 사랑의 부재가 낳은 출구 없는 쾌락의 끝
입력 2013-05-17 18:07 

브랜든(마이클 패스벤더)은 24시간 쾌락에 중독돼 있다. 그의 하루 일과는 혼자 느끼는 즐거움(!)에서부터, 불특정 누군가와의 즐거움으로 끝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뉴욕의 여피로 인생의 어떤 결핍도 없지만 가슴은 헛헛하다. 즐거움을 좇으며 사는 남자. 하지만 진정한 구원은 없다.
남자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재빨리 집으로 향한다. 아직 열어보지 못한 숱한 음란물들이 하드디스크를 채우고 있으니까. 그날도 브랜든은 방구석에 숨겨둔 은밀한 쾌락을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는데 아뿔싸! 집안 기운이 이상하다. 동생 씨씨(캐리 멀리건)가 돌아왔다.
혼자만의 은밀한 공간에 여동생을 들이고 싶진 않다. 그러나 남매잖아”라는 씨시의 말에 오갈 데 없는 동생을 내칠 만큼, 남자는 차갑지도 못하다.
씨씨 역시 중독에 빠져있다. 두 사람이 이성과의 만남을 끊임없이 갖는다는 대목에서 비슷하지만, 본질은 천지차이다. 씨씨는 사랑의 노예다. 브랜든이 평생 한번 뱉어봤을까 싶은 사랑해”를 하루에 백번도 더 말할 수 있는 여자다.

영화 ‘셰임은 두 사람의 삶에 침투한 중독이란 병리의 활개를 그린다. 씨씨는 브랜든의 집에서 상사와 당연하다는 듯이 섹스를 나누고, 브랜든은 자위를 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치부를 들켰지만 당면한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 애증으로 가려진 시야는 서로의 곪은 속내를 외면하게 만든다.
브랜든은 이를 악물고 수치의 순간을 망각의 구렁텅이로 던진다. 욕망을 배설하는 그 순간, 누구보다도 스스로를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건 브랜든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멈출 수 없다. 더 자극적이고 난잡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불온한 쾌락엔 끝이 없다.
영화는 브랜든이 섹스에 중독된 이유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그의 행태에 특이점이 발견될 뿐이다. 바로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사람이라는 것. 사랑으로 규정할 만한 관계 앞에선 쾌락을 주저하고 만다. 언제부터 단추를 잘못 끼워나간 것일까? 브랜든은 사랑을 포기한 그날, 그 자리에 쾌락을 채워 넣었다.
남녀의 나신이 나뒹구는 스크린은 생각보다 외설스럽지 않다. 오히려 더할 나위 없이 슬프다. 새빨간 도색 영화를 보러왔다가 자아성찰하는 특별한 경험(?)을 맛볼 수 있다. 현재 상영중. 101분. 청소년관람불가.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염은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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