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보스턴 테러 용의자, 이민 부적응자의 증오?
입력 2013-04-22 13:15  | 수정 2013-04-22 13:16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 폭탄테러 사건의 형제 용의자들에 대한 여러 증언이 잇달아 나오는 가운데 이들이 미국에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사회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왔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는 이번 사건의 용의자인 체첸 출신 타메를란(26)·조하르(19) 차르나예프 형제에 대해 미국 수사당국이 테러리스트와의 접촉 여부, 종교적 범행 동기 여부 등을 우선적으로 조사하는 가운데 나온 '새로운 관점의 주장'이어서 주목된다.

용의자 형제의 삼촌인 루슬란 차르니(Tsarni)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두 조카를 '낙오자(loser)'라고 지칭했다고 미국 유력지 월스트리트저널이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차르니는 "형제는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그래서 자신들과 반대로 미국 사회에 잘 적응하는 사람들을 증오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범행에 이념적인 동기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번 일은 체첸과는 관계가 없다"고 잘라말했다.

형제의 아버지 안조르 차르나예프는 아내, 2남2녀의 자녀와 함께 민족적 차별을 피하려 미국으로 이주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자라난 안조르는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가족과 함께 독립을 선언한 체첸으로 잠시 이주했다.

그러다 체첸 독립을 추진한 이슬람 반군과 러시아 연방 사이에 전쟁이 나자 키르기스스탄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또다시 차별을 경험하자 안조르는 가족을 데리고 아내의 고향인 다게스탄 공화국 수도 마하치칼라로 이주해 몇 년을 살다가 미국으로 건너왔다.

미국 당국은 용의자 형제가 미국에 각각 다른 시기에 정착했다고 밝혔다. 동생 조하르는 10살 때인 2002년에 부모와 함께 왔고, 형은 2004년 혼자 건너왔다.

가족은 2007년 3월 영주권을 얻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용의자 형제가 잡힌 후 이들의 친구와 친척들로부터 이들 가족의 미국 생활에 대한 증언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종합하면 형제는 건실한 학생이자 열혈 운동선수였으며, 보스턴 테러처럼 섬뜩한 범죄를 저지를만한 가능성은 찾기 힘들었다.

미국에 먼저 와 살고 있던 형제의 아주머니(aunt)뻘 되는 한 친척이 이들 가족의 정착을 도왔다. 보스턴 외곽지역에 둥지를 튼 가족은 그러나 곧 많은 이민자 가정이 맞닥뜨리는 어려움에 직면했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다.

아버지 안조르는 솜씨 좋은 자동차 정비사였지만 안정적인 직장을 찾지 못했고 먹고 살려고 분투해야했다. 한 시간에 10 달러를 받고 길거리에서 차를 고쳐주는 일을 하며 살아가려 애썼지만 곧 이웃들의 항의를 받았다.

이들 가족이 머물던 집의 주인 조안나 헐리에 따르면 안조르의 큰아들 타메를란은 학교에서 우수했지만 등록금이 없어 벙커힐 지역 대학에서 중퇴해야 했다. 둘째 아들 조하르도 수영장 안전요원으로 일하면서 학업을 이어가야 했다.
러시아어를 할 줄 알고 이들 형제의 가정교사이기도 했던 조안나 헐리는 타메를란이 심각한 허리부상으로 복싱선수의 꿈을 접어야 했다고 전했다.

헐리는 "복싱은 타메를란이 열중했던 마지막 일"이라고 전했다.

형제의 친구들에 따르면 케임브리지의 다가구 주택에서 공공 지원을 받아 근근이 살아가던 이 가족은 얼마 안 가 분열되기 시작했고 부모는 갈라섰다. 병을 얻은 아버지 안조르는 러시아로 돌아갔다.

미국 사회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가정이 붕괴하고 아메리칸 드림도 무너진 것이다.

큰아들 타메를란은 2004년 미국에 정착한 직후 출전한 복싱 토너먼트 경기 도중 로웰 선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난 미국을 좋아한다. 미국은 일자리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몇 년 후 그는 자신의 웹사이트에 "난 체첸 출신으로 미국에서 살고 있다. 지난 5년간 난 미국인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난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적었다.

둘째 아들 조하르는 명문 케임브리지 린지 라틴 스쿨의 우수한 학생이었다.

이 학교의 은퇴한 역사교사 래리 아론슨은 "조하르는 인정이 많았고 사려 깊었다"고 말했다.

조하르의 한 동창생은 "조하르의 형과 가족은 서구화(Westernized)되지 못했다. 그러나 조하르는 우리 학교 사회에 잘 적응했고 그는 보통의 미국 아이였다"고 전했다.
조하르는 고교 졸업 후 매사추세츠 다트머스대학에서 의학을 배우고 있었다. 이 학교 기숙사에 머물던 한 학생에 따르면 보스턴마라톤 참사 후인 17일께 조하르가 학교 캠퍼스에서 목격됐다.

미국 당국은 이들 형제가 테러 분자들과 접촉했었는지 조사하고 있다.

지난해 타메를란은 아버지와 친척들이 살고 있는 다게스탄의 수도 마하치칼라를 다녀왔다. 다게스탄은 이슬람 반군의 본거지로 떠오르고 있다.
형제의 아버지 안조르는 타메를란이 다게스탄에서 자신과 함께 있었으며,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을 만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가족의 한 친구는 타메를란이 다게스탄을 떠나기 전 종교적 신념이 더 굳어진 것같아 보였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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