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MB 색깔 지우기인가? 박근혜 코드 인사인가?
입력 2013-03-13 12:17  | 수정 2013-03-13 17:32
역대 정권들을 보면, 새 정부가 출범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전 정권의 색깔 지우기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색깔 지우기를 했고, 그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 서거라는 불행한 일이 생겼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 정권과 차별화를 위해서라도 색깔 지우기는 불가피한 일일까요?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1일 첫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 인터뷰 : 박근혜 대통령(11일 국무회의)
- "새 정부가 막중한 과제들을 잘 해내려면 인사가 중요하다. 각 부처 산하기관과 공공기관에 대해 앞으로 인사가 많을 텐데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과 공기업 사장들을 대거 교체하라는 뜻일까요?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현직 기관장 임기를 '자동 보장'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라고 풀어 설명했습니다.

각 기관장 스스로 생각해보면 자신이 물러나야 할지 답이 나올 것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능력이 없는데도, 이명박 대통령과 직간접적인 친분으로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라면 알아서 빨리 사표를 내라는 겁니다.

물러나지 않으면, 역대 정권이 그랬듯 사정의 칼을 들이댈까요?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실천하려면 5천 개에 달하는 공공기관과 공기업 사장들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사람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문제가 있겠죠.

그래서 어쩌면 대통령이 취임 초 대규모 기관장 물갈이를 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를 달리 보면, 대통령의 코드 인사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이란 바로 박 대통령의 측근이거나 박 대통령의 당선을 도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MB 낙하산 인사들을 솎아 내려고 박근혜 낙하산 인사를 하는 역설이 발생하는 걸까요?

그런데 재밌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인수위 시절 한 말입니다.

당시 한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박근혜 대통령(1월30일 인수위 정무분과)
-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낙하산 인사가 새 정부에서는 없어져야 한다. 낙하산 인사에 있어 근본적인 원인이 제거될 수 있도록 아예 시스템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낙하산 인사를 하지 못하도록 시스템을 만들라는 얘기인데, 엊그제 한 말과는 사뭇 의미가 다릅니다.

그 사이 생각이 바뀐 걸까요?

아니면, 지금부터 임명하는 사람들은 국정 철학을 공유하면서도 실력과 전문성을 갖췄기 때문에 낙하산이 아니라고 봐야 하는 걸까요?

이런 식의 합리화 말들은 역대 정권 초마다 들었던 말이기도 합니다.

인사 역차별을 받을까 걱정했던 친박계 인사들은 안도하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대선 승리에 공을 세우고도 마땅한 보상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박 대통령은 MB 인사들을 친박 인사들로 대거 교체해 새 바람을 불어넣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4대 강 사업에 대한 철저한 검증도 그 연장선상일까요?

박 대통령은 11일 국무회의에도 4대 강 사업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검증을 지시했습니다.

▶ 인터뷰 : 박근혜 대통령
- "예산 낭비와 국민적 의혹이 없도록 철저히 점검해 예산 낭비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 지시에 따라 4대 강 사업 검증단에 그동안 4대 강 사업을 반대해왔던 환경단체 인사들도 포함하기로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4대 강 사업을 찬성한 토목학회만 검증단에 포함한 것을 뒤집은 셈입니다.

4대강 사업 검증은 MB 색깔 지우기의 신호탄일까요?

청와대는 이런 시각에 선을 긋고 있습니다.

어떤 기획이나 의도 아래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사안별로 바로잡자는 취지라는 겁니다.

하지만, 퇴임한 이명박 대통령이 보기에는 썩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지는 것은 노무현 색깔 지우기를 했던 이명박 대통령도 5년 뒤 같은 처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당시에 알았을까요?

'색깔 만들기'와 '색깔 지우기'는 5년 단임제 대통령들이 맞는 운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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