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유명인 '성폭행 혐의'와 성범죄 수법 알려주는 사회
입력 2013-03-06 11:44  | 수정 2013-03-06 18:00
최근 유명 연예인과 헤어디자이너의 성폭행 혐의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인터넷에 마구잡이로 떠돌고 있습니다

그들이 정말 성폭행을 했는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성범죄가 우리의 일상 속으로 너무 깊숙이 들어온 것이 아닌지 걱정될 정도입니다.

연예인 박시후 씨와 공방을 벌이는 A 여성 측은 어제 박 씨 후배인 김 모 씨와 주고받은 카톡 메신저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사건이 있기 전날 밤 술을 많이 너무 많이 마셨다는 내용과 아침에 일어나보니 박 씨와 함께 있어 놀랐다는 내용입니다.

A씨의 몸매가 좋다는 말이 나오고, 'ㅋㅋ'라는 표현도 여러 차례 나옵니다.

더 이상 구체적으로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은밀한 대화내용이 많습니다.

A 씨는 왜 이런 은밀한 내용까지 공개하며 자신이 박 씨에게 성폭행당했다는 사실을 강조할까요?

A 씨측 변호사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고소인 변호사
- "맞고소했다는 이야기 듣고 피해자 측이 가해자로 뒤바뀌는 상황이 되다 보니까 부득이하게 대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A씨 측은 마음을 나눈 것이라는 박시후 씨 주장에 대해 술을 마시다 갑자기 의식을 잃어 마음을 나눌 시간조차 없었다고 반박했습니다.


박시후 측은 박 씨가 아침에 A씨와 서로 인사까지 하며 잘 헤어졌고, 박 씨는 A씨와 계속 만날 생각이 있었다는 인터뷰까지 했습니다.

한마디로 성폭행이 아니라는 겁니다.

누구 쪽 주장이 맞는지는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일반 사람들은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알 필요도 없는 은밀한 얘기까지 마구 쏟아지니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집니다.

어제 시사마이크와 인터뷰한 이명숙 변호사의 얘기입니다.

▶ 인터뷰(☎) : 이명숙 변호사
- "피해자 신원이 완벽하게 노출됐고,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보도되고 있는 게 참 우려스럽고요. 카톡 대화 내용을 언론에 공공연하게 알리면서 자신은 혐의가 없다고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서 피해자들이 꽃뱀으로 몰리거나 사실이건 아니건 모든 것이 드러나는 것이 참 걱정스럽습니다."

박시후 씨에 이어 이번에는 유명 헤어디자이너 박 준 씨의 성폭행 혐의가 터졌습니다.

박 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서울 청담동 미용실 등에서 여직원을 여러 차례 성폭행하고 다른 직원 3명을 성추행한 혐의입니다.

박 씨는 성관계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성폭행이나 성추행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법원은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다며 어제 구속영장을 기각했습니다.

박 씨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박준 / 헤어 디자이너
- "(혐의 사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심문받고 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국민께 한 말씀 해주시죠.) 물의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이들 역시 박시후 씨 사건 당사자들처럼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은밀한 대화 내용이나 사적인 일을 마구 폭로할까요?

관련 여성들의 신상이 또 노출될까요?

우려스럽습니다.

그런데 더 우려스러운 것은 혹시 그들을 따라하려는 모방 범죄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실제로 지금 인터넷에는 성범죄 수법을 알려주는 악성 정보가 인터넷에 난무한다는 겁니다.

심지어 일부 커뮤니티에는 '술에 만취한 여성과 하룻밤 성관계를 맺고 고소당하지 않는 법'을 알려주는 글까지 올라왔다고 합니다.

마약 같은 효과가 있다는 '물뽕'을 만드는 법, 가출소녀를 집으로 불러들이는 방법 등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하는 호기심에서 누군가 따라하지는 않을까, 또 그로 말미암아 어떤 여성들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한마디로 성범죄를 부추기고, 모방 범죄를 불러일으키는 우리 사회의 단면입니다.

그렇지만, 단속은 미미합니다.

현재 정보통신망법은음란물에 대해서만 규제하고, 이처럼 성범죄를 조장하거나 수법을 알려주는 일반 게시판 글은 처벌할 수 없다는 겁니다.

표현의 자유를 악용한 범죄 정보들이 난무하지만, 속수무책입니다.

사이트를 폐쇄한다든지, 그 사이트 운영자를 처벌하는 등 강도 높은 대책을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회 유명인들은 공인입니다.

사적인 영역과 생활은 보장받아야 하겠지만, 그들의 잘못된 행동 하나하나는 호기심 많은 일반인의 잘못된 선택을 부추길 수 있습니다.

그들도, 그리고 언론도, 그리고 우리 사회도 이번 일을 계기로 성범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해 보입니다.

김형오의 기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신민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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