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인사 시스템'에 대한 박근혜 당선인의 생각들
입력 2013-02-01 11:47  | 수정 2013-02-01 17:06
박근혜 당선인이 연일 청문회 인사 시스템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박 당선인은 지난 30일 강원지역 새누리당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국회 인사청문회가 일할 수 있는 능력에 맞춰져야 하는데 조금 잘못 가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어제도 경남지역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 시대의 관행들도 있었는데 40년 전의 일도 요즘 분위기로 재단하는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특히 '어릴 때 집에서 오줌싸서 키를 뒤집어쓰고 이웃집에 소금을 얻으러 다닌 것까지 나오지 않겠느냐'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언론을 통한 사전 검증에 대해서는 '확정된 사람도 아닌데 언론에 알려지면 잘못하면 상처투성이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 당선인은 최근 김용준 후보자의 낙마가 '불통 인사' '밀봉 인사'때문이 아니라 인사시스템 문제라고 보는 것일까요?

그런데 박 당선인의 과거 발언과 행적을 보면 '어 당선인의 생각이 바뀐 건가?'하고 고개가 갸우뚱거려집니다.

박 당선인은 5년 전 당시 이명박 후보와 경선 과정에서 '후보가 결정되면 엄청난 검증의 쓰나미가 몰아닥칠 것이고, 아무리 깊이 감춰둔 것이라 해도 다 드러날 것이다. 그때 가서 또 땅을 치고 후회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또 '누구나 예외 없이 검증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 왜 네거티브냐'는 말도했습니다..

박 당선인이 '신상 털기 식'이라고 비판한 현재의 인사 청문회 제도는 역설적이게도
박 당선인이 8년 전 주도했다는 게 민주통합당의 주장입니다.

2005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당선인은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부동산 투기의혹으로 낙마하자 장관 등 국무위원 후보자 전원을 인사청문회 대상에 포함하자는 개정안을 주도했습니다.

현재의 인사 청문회 제도는 그때 완성된 셈입니다.

박 당선인이 본받자고 얘기한 미국의 예도 논란입니다.

박 당선인은 미국 인사 청문회는 신상 털기보다는 정책 능력 검증에 초점을 맞춘다고 했지만, 실상은 우리보다 더 철저하게 도덕성에 대한 사전 검증을 한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미 연방수사국과 국세청까지 동원해 7년 전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어떤 비디오를 빌렸는지까지 사전 조사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혹독한 사전 검증을 통과해야만 겨우 후보자가 될 수 있다고 하니, 구태여 의회 인사청문회에서 과거와 도덕성 검증을 다시 할 필요가 없겠죠.

어쨌든 박 당선인의 인사시스템 비판은 일면 이해가 되기도 하고, 일면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합니다.

정치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박기춘 / 민주통합당 원내대표(1월30일)
- "대상자를 올바른 시스템에 의해 정확히 추천하지 않고 제도가 잘못됐다고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입니다. 밀봉인사, 자택에서 검증하는 인사가 실패했습니다. 소통의 인사가 중요합니다. 시스템 검증으로 빨리 선회하기를 바랍니다. 주저할 때가 아닙니다. 이에 대한 인식과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박 당선인은 어제 새누리당 지도부와 긴급 회동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도 당 지도부는 당선인에게 후임 총리 인선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제언과 함께 검증 강화의 중요성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혼자서 짐을 지지 말고 우리한테 짐을 나눠달라는 뜻입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나 홀로 밀봉 인사'를 하지 말고 당과 상의하고 적어도 인사가 확정되면 언론 발표 전이라도 당에 알려달라는 겁니다.

어제 MBN 뉴스 M에 출연했던 정우택 최고위원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정우택 / 새누리당 최고위원(1월31일)
- "(김용준 총리 후보자가) 이번에 사퇴하실 때 아마 지명을 받으실 때도 그렇고 이번에 사퇴하실 때도 저희 당은 하나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보도되고 알았습니다.
(앵커) 김용준 위원장이 국무총리 후보자가 된 것도 새누리당에서도 늦게 알았다고 하시던데요?
(김용준 후보자 지명은 당에서도)늦게 가 아니라 몰랐죠. 바로 옆에 서 있던 대변인도 몰랐다고 하니까. 이번에 그만두실 때도 언론 보도에 저녁 늦게 나오지 않았습니까. 저녁 보도가 나오고 나서 저희는 알게 됐습니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박 당선인이 인사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새 총리 후보자와 장관 후보자들, 그리고 청와대 비서실장 인사가 곧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인사가 많이 늦어진데다, 검증 시간은 더더욱 촉박합니다.

기존 방식대로 하다가는 제2, 제3의 낙마자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인수위 안팎에서는 박 당선인이 청와대 인사파일과 검증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변화 조짐이 있다는 말도 들립니다.

삐걱거리는 인사가 제자리를 잡을까요?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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