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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십센치, 우리가 기다리던 록 스타의 탄생
입력 2012-11-09 08:07 

대한민국에 록 밴드는 많지만 록 스타는 없다. 겸손한 척, 착한 척 가식 없이 남들의 시선 따위 의식 않고 말하고 행동하며 가끔은 소소한 사고도 치면서 허세가 넘치지만 평균 이상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그런 모습에 대중들이 더 열광하는, 록 스타 말이다. 물론 십센치(10cm)가 록 밴드는 아니다. 하지만 록앤롤 명예의 전당에 올라간 마돈나도 록 음악을 하는 뮤지션은 아니지 않나.
‘오늘밤에 클린버전을 만들어 앨범에 넣은 건 타협이야. 비겁했던 거지.”(권정열)
그래도 노래가 너무 좋은걸 어떻게. 이건 더 많이 들려줘야 했다고.”(윤철종)
최근 발표한 이들의 두 번째 정규 앨범 ‘2.0은 십센치라는 팀이 단순히 ‘아메리카노 같은 노래가 우연치 않게 성공하고 ‘무한도전 같은 대형 예능프로그램에 출연을 계기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팀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충분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타이틀곡 ‘파인 땡큐 앤유?(Fine Thank you and you) ‘오늘밤에 클린버전을 포함해 총 12곡의 노래는 각각 포크부터 탱고, 트로트, 모던 록 까지 장르적인 스펙트럼이 눈에 띄게 넓어졌다. 기존 어쿠스틱 기타와 젬베하나로만 연주하던 미니멀한 편곡에서 완전히 벗어나 어코디언, 클라리넷 등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며 보다 안정적인 편곡들을 선보이고 있고, 사운드 자체에 다양한 시도들도 곳곳에 드러난다. 매 곡마다 권정열의 보컬이 보다 더 농염해졌음은 말할 나위 없다.
이번 앨범을 위해 서른 곡 정도 만들었다. 곡을 만들다가 특정한 장르의 냄새가 나면 거기에 집중해 보자 하면서 작업을 한 결과 앨범 전체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게 된 것 같다. 일부러 장르적 안배를 하는 따위의 노림수는 없다. 워낙에 초이스 할 곡이 많았고 좋은 걸 고르다 보니 전체적으로 다양해 진 것 같다.”(윤철종)
우리가 음악은 원래 잘하는 애들이다.(웃음) 우린 잃을 게 없으니 이것저것 다 질러볼 수 있는 거 아니겠나. 어떤 사람들은 ‘인기 떨어져봐야 젬베 다시 치지라고 혀를 차는데 그런 거 신경 안 쓴다.”(권정열)
안정적인 사운드에는 디렉터의 도움이 적잖은 몫을 차지했다. 이번 앨범에서 십센치는 데이브레이크 베이시스트 김선일이 참여했다.

우리는 사실 음악적인 지식이나 교양 같은게 전혀 없는 팀이다. 그러다 보니 녹음 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녹음할 때 마다 둘이 싸우느라 해체 직전까지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김선일씨가 연주를 도와주러 왔다가 불쌍해 보였는지 디렉팅을 도와주겠다고 하더라. 김선일씨 도움을 받으니 때깔이 전혀 달라지더라. 우리로써는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나.”(권정열)
‘잃을 것이 없다고 하지만 십센치는 홍대 씬에서 가장 성공한 뮤지션임은 분명하다. 성공이 이들에게 준 가장 큰 변화는 ‘밥 먹는 자유와 이 같은 주변 뮤지션들의 도움들이다.
예전과 가장 많이 달라진 게 있다면 여자친구가 파스타 먹자고 하면 말 더듬으면서 국수 가 먹고싶다 얘기할 필요가 없어진 게 가장 큰 변화다. 음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니 자연스럽게 효자가 되고 베스트 프랜드가 됐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뮤지션들과 원하는 만큼 작업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전엔 아무도 우리랑 같이 하려고 하지 않았다.”(윤철종)
십센치가 우리 대중음악 현실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이들이 기획사에 들어가지 않고 스스로 제작한 앨범을 내고 공연 활동을 하면서 이 만큼의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는 점이다. 기존 메인스트림의 뮤지션들 뿐 아니라 10년차 이상의 밴드 조차도 선뜻 엄두를 못내는 일들을 십센치는 성공적으로 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1집 까지는 거의 대부분을 거의 다 두 사람이 했고, 2집 부터는 오더를 내리는 위치에서 의뢰를 많이 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고는 덜했던 것 같다. 요즘은 기획사가 해주는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나눠가져야 하는) 돈이 아깝다. 무엇보다도 우리 두 사람 다 위에 누가 있는 게 싫어서 그런다.”(권정열)
‘그냥 우리 하고 싶은거 한다는 자신감은 내년 2월 23일 열리는 공연에서 스케일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십센치는 국내 최대규모의 실내 공연장인 체조경기장에서 단독공연을 준비 중이다. 주로 해외 대형 아티스트나, 국내에서도 최정상급 티켓파워를 가진 뮤지션만 설 수 있다는 체조경기장에 인디밴드가 선다는 것은 역사적인 일이다.
아무도 안할 것 같아서 하는거다. 또 우리 같이 생각 없는 애들이 한 번 질러 봐야 우리 같은 친구들이 또 이 무대에 서려고 하지 않겠나. 사실 지금은 사람이 얼마나 들까 이런 고민은 전혀 안한다.”(권정열)
아직 공연에 대한 구체적인 연출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 하지만 대형 체육관 공연이다 보니 기존 십센치 공연과는 전혀 다른 구성이 필요할 듯 보인다.
전에 우리 공연은 사실 상당히 정적이었다. 이번에는 공연 규모가 큰 대신 조금 더 역동적인 무대가 될 것 같다. 이번 공연에서는 얼마나 표현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마초적인 느낌의 섹슈얼리티가 아니라 아름다운 섹슈얼리티로 넘치는 공연을 해보고 싶다. 남자의 시선이 아니라 여성적 시선에서 표현되는 종류의 그것이라면 더 좋을 것 같다.”(권정열)
십센치는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른다. 이들 말대로 갑자기 전곡이 19금인 앨범을 내놓는다거나, 아프리카 같은 제3세계 음악으로 다음 앨범이 나올 수도 있다. 의외로 아무 생각없이 다시 젬베를 잡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제멋대로 구는(?) 모습을 보며 팬들은 낄낄 거리며 때로는 감탄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릴 수 있고, 다른 뮤지션들은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면, 그것이 우리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록스타의 모습 아니겠는가.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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