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단일화 안 하겠다는 건 아니다"의 숨은 뜻
입력 2012-10-31 13:50  | 수정 2012-10-31 17:51
안철수 후보가 마침내 후보 단일화에 대해 말을 꺼냈습니다.

"후보 단일화를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흔히 이중 부정은 긍정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말은 후보 단일화를 하겠다는 것으로 들립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습니다.

후보단일화를 하겠다고 결심했다면, 그냥 "후보 단일화를 하겠다" 이렇게 말하면 될 것을 왜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는 이중 부정 화법을 썼을까요?

혹시 후보 단일화를 하고 싶은 마음은 사실 별로 없는데, 여론이나 주변 분위기가 그러니 마지못해 하긴 해야 할 것 같다는 그런 의미일까요?

어쩌면, 안 후보에게는 여전히 후보 단일화가 그리 급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안 후보가 한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안철수 / 무소속 후보
- "(질문)11월 10일 이전에는 단일화 논의 안 하겠다고 하셨는데?
그 뜻이 저희들이 내부적으로 정책들을 열심히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 제대로 저희가 우리나라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내부적으로 의견을 모으는고 정말로 이게 최선의 안이라는 게 내부적으로 공용화되는 게 우선이지 다른 것들은 거기에 비하면 우선순위가 떨어진다 그런 뜻이었죠. 그리고 목표는 11월 10일 정돈데 그때까지 열심히 하겠지만, 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종의 그때까지 열심히 해보자 그런 뜻이었습니다.

(질문) 정책이 끝나면 단일화 논의에 착수할 수도 있다는 뜻인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지금은 저희가 해야 되는 일이 저희가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를 많은 분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는지 거기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게 선행이 안 되고 다른 얘기 나오는 건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정치쇄신이 먼저지 후보 단일화가 먼저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기존 입장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단일화를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는 말을 후보 단일화를 하겠다는 의미로 그냥 해석하는 것은 어쩌면 무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재인 캠프 쪽은 안 후보가 후보 단일화를 받았들였다는 쪽으로 해석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내심 불안한 기류가 흐르는 것은 아닌지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문재인 / 민주통합당 후보(10월30일)
- "이렇게 중요한 단일화라면 단일화 논의도 좀 열어주십시오 말을 못하겠습니다. 압박한다고 하고 단일화 놓고 서로 각 세우기 주도권 잡기니 이렇게 다가오니까 단일화 논의 자체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어떤 단일화, 어느 시기 단일화, 어느 시기부터 단일화 시작돼야 하는지 터놓고 얘기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언론도 그렇게 조금 다뤄주길 바랍니다. 단일화 논의가 조심스럽기 때문에 더 나가는 것은 부담스러운데 저는 단일화를 이뤄주는 것은 결국 국민이라고 봅니다. 국민이 단일화 필요한 일이라고 요구하면 단일화 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고 하면 어떤 방안 단일화 필요하고 어떻게 힘을 모으는가 이런 것도 모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단일화 논의만큼은 개방돼야 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제 단일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고삐를 죄는 문재인 후보.

단일화 논의가 급한 것은 아니라며 받아치는 안철수 후보.

정말 두 사람의 단일화는 되긴 되는 걸까요?

어떤 사람들은 이런 '주거니 받거니'가 단일화 방식을 놓고 벌이는 힘겨루기로 보기도 합니다.

정치공학적 접근으로는 안철수 후보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지만, 안 캠프에서 단일화 방식을 전혀 고민하지 않고 있다는 말도 설득력은 없어 보입니다.

정치공학적으로 달력을 놓고 따져볼까요?

안 후보가 11월10일까지 정책 개발에 집중하고, 그 이후에나 단일화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했으니 후보 등록일인 25일까지는 보름 정도 시간이 있습니다.

보름 안에 후보 단일화를 이뤄낼 수 있을까요?

일단 민주당이 희망하는 모바일 투표와 같은 국민 참여 경선 방식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새누리당 지지자를 가려내야 하고, 지역별로 연령별로 국민참여경선 비율을 결정해야하는데 시간이 없습니다.

남는 것은 안철수 캠프가 선호하는 여론조사 방식입니다.

MBN 여론조사만 놓고 보더라도, 후보 단일화 방식은 국민 참여 경선이 여론조사 방식보다 두 배 이상 선호도가 높습니다.

민주당의 압박, 그리고 국민참여경선을 선호하는 여론을 비켜가기 위해, 안철수 캠프에서는 후보 단일화 논의를 최대한 늦추고자 하는 걸까요?

민주당으로서는 결국 여론조사 방식을 수용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민주당 내부에서는 안 후보가 단일화를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여론조사 방식이라도 수용하자는 의견이 나옵니다.

TV 토론과 민주당이라는 조직이 뒷받침된 문 후보가 여론조사에서도 역전시킬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실제로 MBN 여론조사를 보면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후보를 지지율에서 앞섰고, 호남에서도 앞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문재인 캠프로서는 여론조사 방식으로도 해볼 만하다는 얘기입니다.

안 후보가 시간을 끌고 싶은 또 다른 이유는 뒤늦게 대선 출마를 한 탓에 지지층이 견고하지 못하고, 또 국정 운영 능력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각종 정책을 내놓고 평가를 받는 과정에서 그런 취약점을 보완해야 하는데,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안 후보로서는 단일화 시기를 늦출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끄는 것이 안철수 후보에게 유리하기만 한 걸까요?

몸이 단 것은 문재인 후보가 맞지만, 후보 단일화 논의를 자꾸 미루는 것은 안 후보에게도 유리하지만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안 후보의 대선 출마 과정에서 봤듯, 지나친 뜸들이기는 피로감으로 나타나고, 정권 교체를 바라는 지지자들이 안 후보에게 등을 돌리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안 후보가 선뜻 후보 단일화를 시작하기도 부담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안철수 후보가 후보 단일화를 시작하는 순간 기존 정치권에 염증이 있는 무당파와 여권 성향의 지지자들이 떠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 후보도 자칫 단일화의 덫에 걸릴 수 있다는 뜻일까요?

'단일화 안 하겠다는 건 아니다'라는 말 속에는 이런 고민이 숨어 있는 듯합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MBN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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