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박근혜와 문재인, 그리고 안철수[10]
입력 2012-09-19 11:00  | 수정 2012-09-20 17:12
박근혜와 문재인, 그리고 안철수 세 사람의 운명과도 같은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각 진영을 대표해, 또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대표해 벌이는 대선전인 만큼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승부입니다.

먼저 포문을 날린 것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입니다.

문재인 후보는 대선 후보 선출 뒤 첫 행보로 현충원을 찾았습니다.

측근들을 대거 데리고 갔던 박근혜 후보와 차별화를 한 듯, 수행원 몇 명과 함께 조용히 찾았습니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과 일반 용사의 무덤에만 헌화했습니다.

전직 대통령들 묘역과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까지 참배한 박근혜 후보의 행보와는 너무 달랐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인터뷰 : 문재인 / 민주통합당 대선후보(9월18일)
- "군부독재, 또 권위주의 체제를 통해서 국민에게 많은 고통을 줬던, 또 인권을 유린했던 정치세력이 과거에 대해 진정한 반성이 있어야 하죠. 새누리당의 전신은 민정당, 민정당의 전신은 공화당이고 군부독재의 권력을 뒷받침한 공화당과 민정당이 이름을 바꿔 새누리당이 아니냐"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가 과거사에 대해 진정한 사과를 하면 가장 먼저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겠다는 겁니다.

공교롭게도 이날 문재인 후보는 새누리당의 텃밭인 경북의 수해지역을 방문했습니다.

적군의 심장부에서 적군의 가장 약한 곳인 역사인식 문제를 찌르는 공격을 감행한 셈입니다.

문 후보 측은 이번 태풍 피해가 가장 심한 곳이어서 왔을 뿐, 정치적 의도를 갖고 온 곳이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이에 질세라 박근혜 후보 역시 야권 후보들을 향한 본격적인 공세를 시작했습니다.

박 후보는 어제 가천대 강연을 통해 리더의 자질을 언급했습니다.

▶ 인터뷰 : 박근혜 / 새누리당 대선후보(9월18일)
- "저도 정치 15년 했는데 어떤 경우든지 그 분야 전문가 된다거나 내공이 있으려면 10년은 필요합니다. 정치인은 국민의 신뢰 간격을 가깝게 가는 게 중요한데 이게 어려움 이겨내는 힘입니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얻는 게 아니고 당장은 손해를 봅니다."

전문가가 되거나 내공이 있으려면 10년은 필요하다는 박 후보의 말은 다분히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원장을 겨냥한 말일까요?

사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원장의 최대 약점은 정치 경험이 적다는 겁니다.

문재인 후보는 참여 정부에서 행정경험을 많이 했지만, 독자적으로 결단을 내려야 하는 리더의 역할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정치 입문도 사실상 지난 총선이 처음인 정치 초년병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닌 듯싶습니다.

안철수 원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 나가겠다고 한 것이 정치 입문이라면 입문이랄까, 정치 경험이 전무한 실정입니다.

박근혜 후보는 어쩌면 두 사람에 대해 정치 경험이 없는, 마치 아마추어 같은 분들에게 어떻게 나라를 맡길 수 있느냐는 공격을 한 걸까요?

박 후보는 여기에다 여성은 조화롭게 하고, 섬세한 특징이 있다며 이것이 정치로 연결되면 국민의 삶을 더 잘 챙길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여성 대통령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할법한 마초적인 남성 우월론자들에게 경고를 보내는 동시에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원장은 생물학적으로 조화와 섬세함을 갖춘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셈입니다.

잠시 뒤 대선 출마 선언을 할 안철수 원장은 어떤 점을 강조할까요?

지난 3월에 한 강연 내용을 들어보면 답이 보일 듯합니다.

▶ 인터뷰 : 안철수 /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3월27일)
- "정치 쪽도 그런다. 보수진보 심하게 싸운다. 과거집착하는 거 필요 없다…미래를 이야기하고 화합소통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냥 싸우기만 한다."

안 원장이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를 공격할 수 있는 고리는 진영 논리에 갇혀 공동체 가치를 외면하는 분열과 대립일지 모르겠습니다.

살벌하게 싸우는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를 보고 있노라면, 도저히 두 진영은 화합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안 원장은 아마도 이 점을 공략하며,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모두 대안이 아님을 강조할 듯합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연대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이지만, 문재인 후보는 연대의 대상인 만큼 안 원장이 문재인 후보를 혹독하게 비난할 수는 없겠죠.

이런 점에서 놓고 보면 당분간 이런 3자 구도는 박근혜 후보에게 불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원장이 손을 잡고 박근혜 후보를 몰아붙이는 형국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원장의 단일화 국면이 가까워지면 질수록 두 사람도 서로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양보 없는 전쟁을 치러야 하겠죠.

그 운명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론조사에서는 누구의 승리를 점치기 어려운 혼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47.1%로, 44%를 보인 박근혜 후보를 오차범위 내에서 처음으로 앞질렀습니다.

문재인 후보의 컨벤션 효과와 박근혜 후보의 역사인식, 그리고 홍사덕 전 의원 등 측근 비리의혹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입니다.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원장과 양자대결에서도 44.9% 대 32.3%로 크게 앞섰습니다.

다자대결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38.6%, 문재인 후보가 26.1%, 안철수 원장이 22.5%를 보였습니다.

(조사대상 : 전국 남녀 1,500명,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 ± 2.5%p, 조사방법 : 유선전화 및 휴대전화 임의 걸기 자동응답 전화조사)

대선이 3자 구도로 치러지면, 박근혜 후보가 유리하지만,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원장의 후보 단일화 가능성이 큰 만큼 쉽게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그 주사위에 세 사람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때가 됐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hokim@mbn.co.kr] MBN 뉴스 M(월~금, 오후 3~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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