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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김명민에 낚이고, 유해진에 또 놀란다 ‘간첩’
입력 2012-09-19 08:40 

배우 김명민에게 속아 넘어갔다. 그는 영화 ‘연가시를 끝으로 당분간 불쌍해 보이거나 고생하는 캐릭터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다짐은 기사로도 꽤 많이 접했다. 하지만 김명민은 영화 ‘간첩(감독 우민호)에서도 고군분투한다.
극 초반은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중국에서 밀수한 비아그라를 불법으로 팔지만 나름 직업도 있고, 폼 나는 슈트에 유명 브랜드 선글라스를 끼고 다닌다. 겉모습은 번지르르하다.
북에서 넘어온 간첩 김 과장(김명민)은 한국 사회에 찌들어 살고 있다. 집주인은 전셋값을 3000만원이나 올려 달라고 하지, 애들 교육에도 만만치 않게 돈이 들어간다. 한국의 일반 서민 가장과 다름없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 북에서 귀순한 고위 간부 리용성을 제거하라는 지령을 10년 만에 받았지만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김명민만 고달퍼 보이는 건 아니다. 염정아는 남편과 이별하고 홀로 시각장애 아들을 키우는 동네 부동산 아줌마 강대리를, 정겨운은 FTA에 반대에 앞장서는 귀농청년 우대리를, 변희봉은 간첩들의 신분세탁을 전문으로 하는 공무원 윤고문을 맡았다. 이들은 우리사회에서 상위 계층을 차지하는 신분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우리 이웃으로 살고 있는 인물들이다.

영화는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가 지난 1997년 망명하면서 남한 내 고청간첩 5만명이 암약하고 있다”고 충격 발언한 게 모티브다. ‘대한민국 간첩 인구 5만명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란 질문. 강산도 변하는 세월인 10년 동안 간첩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우민호 감독은 간첩들이 궁상맞지만 여느 일반인들과 다름없이 살고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감독은 간첩을 빗대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실의 삶을 제대로 포착, 의미심장한 것들을 전달한다. 과거 영화들이 반공의식을 전면에 내세운 것과 달리 ‘간첩은 자본주의, 싱글맘, 독거노인 등을 소재로 적용시켰다. 신선한 발상이다. 코미디를 외피로 쌓아 재미도 찾으려 했다.
김명민이 화려한 액션도 선보이는 점을 특기할 만하다. 지질해 보이는 김과장이지만 북의 특수부대 출신답게 편의점 강도를 날렵하게 제압하고 자신을 잡으려는 국정원 요원 1~2명은 손쉽게 처리해 버린다. 과거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 김과장의 액션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진 않지만 단편적으로 보면 영화 ‘아저씨의 원빈 저리가라 할 정도다.
유해진은 이제 멋진 역할, 눈에 띄는 역할을 주로 맡게 됐나 보다. ‘미쓰고에서 만화 속 주인공 같은 매력을 유감없이 발하더니 이번에도 매력을 뽐냈다. 매서운 눈빛으로 상대를 노려보고, 기관총을 사정없이 쏴대는 모습에 반할 이가 한, 두명이 아닐 것 같다. 북의 최고 암살 요원 최부장이라는 악역이지만 강렬한 카리스마가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깔끔하고 댄디한 이미지로 사랑받았던 정겨운의 충청도 사투리는 구수해서 웃음을 주고, 염정아는 억척스러운 아줌마지만 작전상 입은 원피스 한 번으로 볼륨감을 드러낸다. 변희봉의 존재감도 만만치 않다.
긴장감과 박진감이 넘치는 자동차 추격신과 총격신, 격투신도 볼거리를 더한다. 10차로를 통제하고 차량 50대, 보조출연자 400여명이 동원된 추격, 액션신 등이 관객들을 집중시킨다. 의외로 웃음을 주는 신도 많으니 기대해도 될 만하다.
특히 캐릭터들의 깨알 같은 대사들이 재미를 준다. 애 봐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해. 이번 한 번만 작업에서 빼주라”라고 말하는 염정아나, 총을 산에 묻어뒀는데 재개발돼 아파트가 들어섰다”는 김명민의 대사들은 피식피식 웃음이 나게 한다.
아쉬운 건 황장엽 전 비서의 발언은 간첩이 권력 내부에도 깊숙이 침투했다고 한 게 초점이었던 것 같은데 ‘생활형 간첩에만 시선을 고정시켰다는 점이다. 우 감독은 끝도 없이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지만 가볍게 풀고 싶었다. FTA, 전셋값, 싱글맘, 독거노인 등 다양한 문제로 아파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영화가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말했지만 고위층 간첩이 더 궁금해진다.
10년 만에 북의 지령은 받은 간첩들이 지령 수행과 동시에 한탕을 위한 이중작전을 계획하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115분. 15세 관람가. 20일 개봉.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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