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각본 있는 새누리당, 각본 없는 민주통합당
입력 2012-05-21 11:44  | 수정 2012-05-21 17:36
민주통합당 지도부 선출에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지역 순회 경선 첫 번째 지역인 울산 지역 대의원 투표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김한길 후보가 1위를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대세론이었던 이해찬 후보는 48표로 우상호, 추미애 후보보다도 낮은 4위를 기록했습니다.

1위인 김한길 후보와도 두 배 이상 표 차이가 났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이해찬-박지원 연대설이 나왔고, 힘겹긴 했지만, 박지원 의원이 원내대표로 당선되면서 이해찬 대표도 사실상 굳어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이-박 연대에 대한 당내 반발은 더욱 커졌고, 이-박 연대를 지지한 문재인 고문에 맞서 김두관·손학규 대선 주자들의 견제 심리도 작동했습니다.

울산 경선에서 1위를 한 김한길 후보의 말입니다.


▶ 인터뷰 : 김한길 / 민주통합당 당선인(5월20일)
- "총선 패배로 위기를 맞았는데 소위 이박연대라는 밀실 담합 때문에 당이 더 큰 위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잘못된 각본 때문에 정권 창출의 기회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친노세가 강한 경남 지역의 첫 관문인 울산에서 친노의 좌장인 이해찬 후보가 패한 것은 말 그대로 놀라운 일입니다.

특히 울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노풍을 일으킨 첫 출밤점이었기에 이해찬 후보 측이 받은 충격은 더 컸습니다.

이해찬 후보 측은 울산 지역 대의원은 전체 대의원의 1.1%에 불과하다며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반면 김한길 후보 측은 이-박 연대에 대한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며 더 큰 이변이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습니다.

관건은 오늘입니다.

대의원이 660명에 이르는 부산 경선에서 흐름이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부산은 울산보다 친노 성향이 더 강해 이해찬 후보에게 유리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이-박 연대에 대한 역풍과 친노 독주에 대한 견제가 작용하면 이변이 또다시 연출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해찬 후보의 첫 패배는 대선 주자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문재인 고문은 어제 울산 경선 현장을 직접 찾았지만, 뜻밖의 결과가 나오자 다소 충격을 받은 분위기입니다.

만일 부산에서도 이해찬 후보가 패한다면, 문재인 대망론도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김두관 손학규 고문 측은 경선 결과에 반색하는 분위기입니다.

'문재인-안철수 공동정부론'을 시기상조라며 비판하는 김한길 후보의 승리로 김두관 손학규 고문의 대선 행보에도 숨통이 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민주통합당 대권 레이스는 치열한 접전을 방불케 할 전망입니다.

흥행을 일으킬 요소가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각본 없는 드라마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은 민주통합당의 오늘 부산 경선과 내일 광주 전남 경선으로 쏠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흥미가 점점 떨어지고 있습니다.

너무나 잘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은 오늘 신임 사무총장에 친박계 4선 의원은 서병수 의원을 임명했습니다.

친박계인 황우여 당 대표, 친박계인 이한구 원내 대표, 친박계인 서병수 당 사무총장으로 친박 트라이앵글이 완성됐습니다.

황우여 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황우여 / 새누리당 대표(5월21일)
- "근데 계파보다 적합도 일을 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아까 말한대로 조화롭게 잘 인사하고, 조화롭게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내 의견 호불호 보다 팀워크니까 잘하실 분을 모셨으면 좋겠다고 해서 인사가 그렇게 된 것이다."

당 사무총장 자리는 대선 경선을 준비하는 주 축입니다.

당 대표에 이어 당 사무총장까지 친박계가 접수함으로써 박근혜 대세론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한구 원내대표가 선출됐을 때도, 황우여 대표가 선출됐을 때도, 또 서병수 사무총장이 선출됐을 때도 감동은커녕 흥미조차 느껴지지 않은 것은 왜일까요?

방영 첫 회부터 결말이 이미 드러나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드라마가 끝났기 때문은 아닐까요?

총선이 끝나고 새누리당 대표와 사무총장, 원내대표는 누가 누가 한다는 지도부 리스트가 돌 때부터 사람들은 친박계의 지도부 접수를 기정사실화 한 듯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나리오대로 친박계가 당을 접수했습니다.

마치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위해 잘 짜인 후방 지원부대처럼 말입니다.

다른 대선 주자들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황우여 대표를 만난 정몽준 의원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정몽준 / 새누리당 대선 후보(5월20일)
- "하하하 뭐 이야기하지 말자고 그랬는데 다 이야기할까요? 뭐 여러 가지 이야기했는데 자신이 당 대표의 자리가 책임이 크고 공정한 경선관리를 위해 잘해달라고 부탁드렸다."

황 대표가 비박 대선주자들을 만나 완전국민경선제에 대한 의견을 듣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수용 가능성이 작아 보입니다.

어쨌든 이제 남은 순서는 박근혜 전 위원장의 대선 출마 공식 선언인 듯합니다.

박 전 위원장은 홈페이지에 '149일의 일정을 끝내며'라는 글을 올려 대선 출마 뜻을 밝혔습니다.

"또다시 시작할 것이다. 국민과 약속을 지키고 국민이 원하는 삶을 이루기 위해 마지막 나의 정치적 힘을 다하려 한다"

박 위원장의 대선 출마는 어떤 감동을 줄까요?

대세론이 너무나 압도적인데다, 당 지도부가 모두 친박계로 짜인 상황에서 다른 대선주자들은 혹시 들러리로 전락하는 것은 아닐까요?

비박 대선주자들에게는 너무나 죄송스런 말이긴 하지만요.

각본 없는 드라마와 각본 있는 드라마의 최종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관객과 시청자의 반응이 썩 좋지 못하면 각본은 언제든 수정될 수 있으니까요.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 김형오 / hokim@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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