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결과, 한줄기 희망을 쫓고 있는 미얀마 국민들의 강력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민주화 영웅 아웅산 수치 여사가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 미얀마 45개 선거구에서 치러진 상·하원의원 보궐선거에서 미얀마의 옛 수도인 양곤의 빈민층 지역 카우무에 출마한 수치 여사를 비롯해 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후보 43명이 당선되며 압승을 거두었다.
민주주의 민족동맹 대표 아웅산 수치 여사는 나는 민주주의를 실현시키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았다.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할 것이며, 살아있는 한 혹은 그것을 이룰 때까지 계속 전진할 것이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1988년 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이래 줄곧 재야에서만 활동하며 제도권 정치에 진입하지 못했던 수치 여사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미얀마 민주화의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넘쳐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군부 아래 미얀마 국민들은 오랜 억압과 탄압에 따른 극심한 고통 속에 살아왔다. 1962년 3월, 네윈의 무혈 쿠데타에서부터 미얀마의 군부독재가 이어져왔다. 영국과 인도의 오랜 ‘이중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미얀마 민족의 독립경제를 이룩하고자 했던 초기 군부의 명분과는 달리, 몇몇의 이익만을 지켜왔던 군부독재에 미얀마 국민들은 신음해왔다.
지난해 미얀마의 1인당 국내 총생산은 세계 160위권인 7백 달러 수준. 국민의 4분의 1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그리고 2012년, 또다시 민주주의가 시작될 기회를 잡은 미얀마 국민들은 간절한 희망을 염원하고 있었다.
아웅산 수치 여사는 1989년부터 2010년 까지 수차례 가택연금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녀가 고립된 채 세상에 드러나지 못했음에도 국민들 사이에 정신적 지주 역할이 가능했던 이유가 있다. 어떠한 야권 지도자와의 결합도 없이 사람들에게 비폭력 저항의 메시지와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을 꾸준히 심어줬기 때문이다.
아웅산 수치 여사는 미얀마 국민들에게 ‘용기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미얀마 국민들은 2015년 선거에서 그녀가 대통령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미얀마에 민주주의가 싹 트기를 바라고 있다.
미얀마 민족의 경제적 자립을 외치며 독재를 정당화해온 부패정권은 국가경제를 파탄시켰다. 미얀마 국민의 4분의 1이 가스도, 전기도 없는 곳에서 식수로 사용할 수 없는 흙탕 우물에 의존해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그 곳 아이들은 아웅산 수치의 얼굴을 그려 방에 붙여 놓고는 ‘엄마라고 표현했다. 그녀가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해줄 거라는 굳은 믿음이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선거가 경제적 어려움, 국민들의 불만, 국제 사회의 비난 등을 불식하고자 현정권이 선택한 제스처라는 분석도 있다. 아웅산 수치로 인해 22년 만에 봄을 맞이한 미얀마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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