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CSI효과 ?` 영화같은 패륜범죄
입력 2011-04-05 08:57 


대한민국이 `엽기ㆍ패륜 범죄`의 온상이 되는 것일까.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던 한국에서 `예의`는커녕 `인륜`마저 사라지고 있다. 한편의 지옥도, 엽기 범죄를 다룬 외국 소설ㆍ영화 같은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아버지가 친딸을 성폭행하고, 수면을 방해한다며 어린아이를 밟아 죽이는 사건도 벌어졌다. 어머니가 자식을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뒤 불에 태우는 일도 일어났다. 만삭의 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의사 남편이 구속되기도 했다. 최근엔 경찰관인 친아버지가 자신을 성폭행했다며 고소했다 거짓임이 드러난 사건까지 발생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수법의 엽기ㆍ패륜 범죄가 대부분 일어난 셈이다. 웬만한 잔혹 범죄엔 이제 대부분 사람들이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세상이 된 게 더 무섭다.

4일 경찰 통계에 따르면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 범죄는 최근 몇 년 새 급격히 증가했다. 전국에서 발생한 존속살해 범죄 발생 건수는 2008년 44건에서 2009년 58건, 지난해 66건으로 해마다 늘었다. 40건이 일어난 2006년과 비교하면 5년 만에 발생 건수가 무려 65%나 급증한 셈이다.


청소년 범죄도 나날이 잔혹해지고 있다. 2010년 여름 `홍은동 친구 살해사건`에 이어 지난 2월엔 10대 소녀들이 자신보다 어린 초등학생 소녀를 모텔에 감금해 놓고 성매매를 강요하다가 붙잡히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사회가 극도의 `아노미 상태`라고 입을 모은다.




표창원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전통적 유교사회의 엄격한 윤리와 도덕이 사회에서 사라졌지만 이를 대체할 새로운 철학이나 윤리, 도덕과 규범이 자리를 잡지 못한 게 아노미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과학수사 등을 다룬 드라마 등을 본 뒤 `과학수사 때문에 검거될 수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폭행을 살인으로 변하게 하고 단순 도주하지 않고 시신을 토막 내거나 유기하는 등 사건을 극단화시키기도 한다"며 "이를 `CSI효과`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 범죄 잔혹화 현상에 대해 "소년범들에 대한 관리를 담당하는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며 "관대한 처벌에 대한 철학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아이들을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상습 범죄자가 된 뒤 성장하면 친족살해가 뭐 대단한 일이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엽기ㆍ잔혹ㆍ패륜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장기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보였다.

표 교수는 "가시적인 조치로 당장 엽기 범죄를 뿌리 뽑겠다는 인식이 잘못됐다"며 "평소 잔혹한 행동을 보이거나 분노와 불만이 가득 차 있는 사람들, 간헐적으로라도 공격적 태도를 보이는 이들, 주변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미리 상담하는 등 돌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가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의 황량한 정신건강 문제를 앓고 있는 셈"이라며 "대화가 어려운 갈등 상황에서 개인이 의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범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심리적 상황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는 범죄를 결심한 예상 범죄자가 자신의 범죄 의지를 털어놓을 만한 대응 시스템이 없다"며 "정부나 수사당국은 범행을 저지르려는 이가 자신의 심정을 신고하면 적절히 대응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승연 기자 / 배미정 기자 /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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