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대기업 회장들이 선택한 패션 아이템
입력 2010-12-01 11:30  | 수정 2010-12-01 11:35
"대기업을 이끄는 CEO들은 눈에 도드라지는 패션 액세서리는 즐겨 하지는 않는다. 대신 쉽게 구할 수 없는 희귀성 있는 아이템이나 최고급 소재로 만든 고가의 제품 등을 즐겨 한다."


다양한 디자인과 다채로운 컬러로 화려하게 꾸밀 수 있는 여성과는 달리 주로 슈트 차림의 남성들은 스타일링을 할 수 있는 폭이 상대적으로 좁다. 특히 패션에 있어 보수적인 경향이 강한 한국 사회의 남성들은 그 스타일이 비즈니스 슈트로 한정되어 있다. 재킷과 팬츠 그리고 셔츠라는 한정된 아이템으로 개성과 취향, 패션감각을 어필하기란 쉽지 않다. 칼라의 폭이나 라펠의 길이, 포켓 디테일, 전체적인 실루엣 등으로 변화를 줄 수 있지만 드라마틱한 스타일을 연출하기에는 부족하다. 대신 가방이나 구두, 안경 등 액세서리로 품격을 드러내는 것이 좋다. 남성들이 가방이나 구두, 넥타이 등의 아이템을 고를 때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대기업을 이끄는 CEO들은 눈에 도드라지는 패션 액세서리는 즐겨 하지는 않는다. 대신 쉽게 구할 수 없는 희귀성 있은 아이템이나 최고급 소재로 만든 고가의 제품 등을 즐겨 한다. 특히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럭셔리 브랜드가 아닌, 명품 중에서도 명품으로 꼽히는 일명 위버 럭셔리 브랜드(Uber Luxury Brand)를 선호한다. 또 다른 특징은 명품 중에서도 브랜드 로고가 밖으로 드러나는 제품은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위화감 조성을 방지하고자 하는 이유도 있지만 기업 회장들이 즐겨하는 위버 럭셔리 브랜드 자체가 로고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패션 브랜드를 유통시키는 기업의 회장은 자사 브랜드 제품을 선호한다. 기업을 대표하는 CEO가 사용하는 아이템이라는 사실로도 충분한 마케팅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슈트 브랜드를 즐겨 입던 LG패션의 구본걸 대표가 최근에는 대부분의 공식석상에서 자사 제품인 마에스트로를 즐겨 입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스테파노 리치의 제품을 자주 입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만년필은 필기도구가 아닌 럭셔리 액세서리>

슈트 재킷 안쪽에 지니고 있다 잠깐 꺼내 드는 만년필. 빈번히 중대한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대기업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에게 만년필은 단순히 필기도구가 아니다. 개인은 물론 기업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고가의 만년필을 사용한다. 삼성그룹은 몽블랑과 인연이 깊다. 이건희 회장은 몽블랑 수집가로 알려져 있다. 선대 회장인 고 이병철 회장도 몽블랑 컬렉션을 수집하는 몽블랑 애호가였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06년 신임임원 100여 명에게 몽블랑 만년필을 선물하기도 했다.


하나은행에는 전임 행장이 신임행장에게 몽블랑 만년필을 물려주는 전통이 있다. 몽블랑 만년필은 질 좋은 필기도구가 아닌 예술적 가치를 지닌 명품이다. 제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150여 회의 생산 공정이 필요하며 검증된 장인이 수작업으로 펜촉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맞춤 구두를 선호하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구두가 닳는 것을 막기 위해 뒷굽에 징을 박아 신고 다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계속 굽을 갈아가며 같은 디자인의 구두를 30년 넘게 신었다고 전해진다. 정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유품으로 구두가 공개되었는데 양쪽의 엄지발톱 부분에 구멍이 나 있을 정도였다. CEO들이 즐겨 신는 구두로 알려진 브랜드는 110년의 역사를 가진 프랑스 명품 브랜드 벨루티. 서양 상류사회 멤버십의 대명사인 벨루티는 ‘영혼을 지닌 구두로 불린다. 구두 한 켤레를 완성하기까지 250번의 수작업 공정이 필요하며 한 켤레가 제작되는데 200여 시간이 소요된다. 벨루티의 기성화는 현대인의 발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15종에 이르는 발본을 기준으로 제작돼 맞춤 구두만큼이나 편하다. 특히 벨루티 비스포크(Bespoke) 구두는 한 켤레를 제작하는데 약 1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정확한 발의 모양을 본뜨는 데만 6개월이 걸릴 정도로 완벽한 품질을 추구한다.

베니스 가죽을 갯벌 속에서 숙성시킨 후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한 벨루티의 기성화 가격은 200만원대부터 시작한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신세계인터내셔널 분더샵의 비스포크 구두를 즐겨 신는다. 최고급 가죽을 사용해 만드는 맞춤 구두의 가격은 1000만원을 호가한다. 발 모양의 본을 만드는데 6개월, 본격적인 제작에 약 4개월이 소요된다.

<취향이 적극 반영된 시계>

남성들이 가장 즐겨 하는 액세서리인 시계에 대한 취향 역시 다양하다. 국내의 두 번째 부호인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은 그룹이 판촉용으로 제작한 기업 시계를 차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반대로 패셔너블한 스타일로 과감한 스타일을 즐기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클래식하고 중후한 디자인의 시계만 찰 것 같은 대기업 CEO의 고정관념을 바꿔놓았다. 4대 그룹 대표 자격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북에 동행했던 최 회장은 말끔한 그레이 슈트 차림이었는데, 디지털 카메라로 노 전 대통령을 촬영하던 중 소매 밑에 숨겨져 있던 초록색 러버 소재의 시계가 공개되었다. 대기업의 수장이 차기에는 다소 캐주얼하고 독특한 디자인의 이 시계가 공개되면서 최 회장의 패션 스타일은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젊은 감각과 대담함으로 다양한 스타일링을 시도하는 최 회장의 면모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회장님 안경으로 통하는 귀갑테>

2007년 보복 폭행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모습을 드러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 회장의 안경테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면서 각종 포털 사이트 상위권에 ‘김승연 안경이라는 검색어가 랭크되기도 했다.

김 회장이 착용한 노란색의 안경테는 일본의 명품 브랜드 오사와 베코(Osawa Bekko) 제품. 대기업 회장들이 자주 착용해 일명 ‘회장님 안경으로 불린다. 열대 바다거북의 등껍질로 만든 귀갑테로 가격이 수천만원에 이르는 최고급 제품이다. 장수와 부귀의 상징인 거북이 등껍질을 이용해 만든 안경테의 가격은 300만원대부터 시작되며 희귀한 제품은 1억원을 호가한다.

귀갑테는 거북이 등껍질을 벗겨내 불에 굽거나 뜨거운 물을 부어 얇게 쪼갠 뒤 100% 수공으로 만든다. 귀갑테의 품질에 따라 등급이 나눠지는데 색이 어둡고 여러가지색이 섞일수록 등급이 낮다. 반대로 호박색에 가깝고 한 가지 색으로 이루어질수록 등급이 높은 제품이다. 김 회장이 착용한 제품은 귀갑테 중에서도 매우 귀한 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평소 머플러나 포켓치프 등을 활용해 슈트에 멋을 더하는 스타일리시한 김 회장다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여성 CEO 패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공식석상에 등장할 때면 어두운 계열의 의상에 스카프를 즐겨 맨다. 구두는 장식이 거의 없는 단정한 디자인의 펌프스를 주로 신고, 가방 역시 악어 가죽이나 파이톤과 같은 고급 소재의 심플한 제품을 선호한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재벌 2세의 경우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브랜드를 선호한다. 이부진 신라호텔 전무는 공식석상에서 주로 팬츠 룩을 선보인다. 단정해 보이면서도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적당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스타일이다. 반면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을 졸업한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는 과감하게 패션을 즐긴다. 이 전무가 국내에 들여온 꼬르소 꼬모에 입점된 브랜드나 자신이 론칭한 제일모직의 브랜드 의상을 즐겨 입는다.

[신경미 기자 lalala-km@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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