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땅부자` 롯데그룹 부동산 파는 속내
입력 2010-09-28 10:01 
부동산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기업들은 불황 타개책을 마련하는데 고심하고 있다. 하루 이자만 100억원 이상을 내고 있는 LH는 부동산 자산 매각으로 빚을 갚으려 하고 있고, 워크아웃 건설사들은 본사 매각 등의 자구책까지 내놓으며 재무구조 개선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가운데 ‘땅 부자로 불리는 롯데그룹조차 부동산 매각에 나서고 있어 관심이 집중된다. 롯데쇼핑은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보유 부동산을 유동화해 64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대상 부동산은 경기 성남시 수내동에 위치한 롯데백화점 분당점과 롯데마트 서울 도봉, 구로점, 분당 수지점, 부산 사상점, 전북 익산점 등 총 6곳이다.

물론 단순 매각 방식은 아니다. 롯데그룹은 이들을 패키지로 묶어 매각하고 10~20년 간 임차해 사용하는 ‘세일&리스백(Sale&Lease back, 매각 후 재임대)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다. 세일&리스백은 기업이 보유한 자산 중 수익성이 떨어지거나 활용도가 낮은 부동산을 팔거나 매각한 뒤 임대로 빌려 쓰는 방식을 말한다. 이번 매각작업은 미국계 은행인 BOA(Bank of America)가 주관하고 몇몇 금융회사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롯데쇼핑은 올 9월 기준으로 전국에 롯데백화점 29개점과 롯데마트 86개점을 운영 중이다. 백화점의 경우 대전점, 안양점, 건대스타시티점, 청량리점 등 4개가 임차방식으로 운영 중이고 나머지는 부동산을 직접 소유한 형태다. 마트도 총 86개 중 17개가 소유권이 없는 임차 형태로 운영해왔다. 이번에 롯데백화점 분당점이 매각된다면 백화점 임차 점포는 총 5개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4월 기준 롯데쇼핑 소유 영업점의 총 공시지가는 4조6667억원 수준이다.


롯데쇼핑은 사실 금융위기 이전인 2008년 초에도 부동산 자산을 매각한 적이 있다. 롯데마트 제주점과 인천 항동점, 대전 대덕점 등 3개 점포를 부동산 투자회사인 ING KPI에 매각하고 14년간 임차하는 조건으로 2200억원을 조달했다. 하지만 백화점 매각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롯데그룹이 부동산 매각 대열의 중심에 서 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사실 롯데는 YS정부 시절 엄청난 세금을 내면서도 부동산을 팔지 않고 버틴(?) 경력이 있다. IMF 외환위기 당시 기업들이 온통 구조조정에 나설 때도 부동산 자산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다. 부채비율이 낮아 건실한 기업인데다 오너인 신격호 회장부터 부동산 투자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상황에서 굳이 부동산을 매각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 회장은 그동안 땅을 직접 사서 개발하는 방식을 고수해왔다. 서울 양평동 롯데제과 사옥 부지(67년)과 잠실 롯데월드 부지(81년), 제2롯데월드 부지(87년)은 신 회장이 동물적인 감각으로 직접 발품을 팔며 개발을 준비한 땅으로 꼽힌다.

경제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시골의사 박경철 씨 역시 트위터를 통해 롯데의 부동산 자산 유동화에 관심을 표명했다. 그는 "부동산시장에 천부적 감각과 애정을 가진 기업들의 부동산 자산 축소가 예사롭지 않다"며 롯데를 `카나리아`에 빗대기도 했다. 광부들이 이산화탄소에 민감한 새 카나리아로 위험신호를 포착하는 것처럼 부동산 촉각이 발달한 롯데그룹의 자산 유동화를 부동산시장 변화의 서곡으로 읽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롯데그룹이 급기야 부동산 자산 매각에 나선 건 여러 의미로 풀이된다. 첫째 부동산 자산 매각대금으로 차입금을 상환하고 재무건전성을 높이려는 움직임이다. 롯데는 매각대금 대부분을 지난해 10월 인수한 중국 유통업체 타임스(7300억원)와 올 2월 인수한 GS스퀘어(1조3400억원)의 차입금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롯데쇼핑은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토지, 건물 등 유형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64%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자산을 유동화해 몸집을 가볍게 하는 한편 총자산이익률(ROA)를 높이기 위한 목적도 있다. 더 나아가 M&A 시장에 뛰어들기 위한 실탄을 확보하기 위해서란 분석도 나온다.

둘째 더 이상 부동산 투자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본 노무라증권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신동빈 부회장 의중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는 대표적인 부동산 부자 그룹이지만 `부동산 불패 신화`는 더 이상 나타나기 힘들 것이란 입장으로 바뀌었다”며 일본 부동산 시장 침체를 주의 깊게 봐온 신동빈 부회장이 경영을 맡으면서 ‘유통기업으로서 부동산 자산은 늘 수밖에 없지만 이를 슬림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론을 펼치는 것도 한몫했다”고 설명한다.

또한 내년부터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되면서 자산재평가를 해야 하는 상황. 장기 보유 부동산의 시가 반영으로 장부상 자산이 늘어나는 데 따른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도 해석된다. 멀리 보면 더이상 백화점, 마트를 지을 만한 알짜 부지가 없어 임차 형식의 점포 개발 트렌드를 준비하기 위한 선제조치란 분석도 나온다.

상업시설 전문 컨설팅업체인 에이케이앤라비파트너십 김성문 사장은 그동안 신격호 회장은 영업이익은 부수적이란 생각 속에 땅 매입을 통한 자산가치 상승에 중점을 뒀는데 이제 단독 백화점, 마트를 열만한 알짜 부지가 사라져 복합쇼핑센터에서 분양 받거나 임대형식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늘었다”며 유통업체들의 개발방식 변화에 따른 하나의 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고 밝힌다.

롯데그룹은 이번 조치를 단순히 재무건전성 확보 차원에서 봐달라는 입장이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이번 매각대금은 중국 타임스, GS스퀘어의 차입금 상환에 사용해 재무건전성을 높일 계획"라며 "일각에서 제기된 국외 진출, M&A를 위한 자금 마련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고 못박았다.

이런 가운데 `유통 라이벌`로 꼽히는 신세계그룹은 오히려 반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신세계 측은 경기가 좋아지면 부동산 가치는 자연스레 올라가기 때문에 굳이 자산유동화로 현금을 마련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정용진 부회장은 백화점, 마트 등을 출점할 때 웬만하면 소유권을 100% 확보하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분위기다.

시장에서는 롯데그룹의 이런 움직임을 대체로 밝게 보고 있다. 불황에 실탄을 충분히 확보하면 재무건전성 확보는 물론이고 국외 시장 공략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롯데쇼핑의 지난해 국외매출은 1조2000억원에 그쳤지만 올해 2조5000억원, 내년 3조4000억원으로 점차 늘어날 전망이다. 국내 매출 대비 비중도 올해 18%, 내년 22%로 점차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남옥진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롯데는 자산을 유동화한 뒤 중국 등 국외자산을 적극 취득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며 그동안 국외 투자는 초기단계라 적자였지만 향후 전망이 밝고 비중도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매경이코노미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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