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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를 깨다…‘살인마 잭의 집’ 라스 폰 트리에 [M+김노을의 디렉토리]
입력 2019-02-15 13:01 
‘살인마 잭의 집’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사진=ⓒAFPBBNews=News1
연출자의 작품·연출관은 창작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영화, 드라마, 예능 모두 마찬가지죠. 알아두면 이해와 선택에 도움이 되는 연출자의 작품 세계. 자, 지금부터 ‘디렉토리가 힌트를 드릴게요. <편집자주>

[MBN스타 김노을 기자] 피하고 싶지만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붙잡히는 대상이 있다. 무시하고 싶지만 차오르는 궁금증을 당해낼 재간이 없을 때가 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가 그렇다.

덴마크 출신 영화감독 라스 폰 트리에는 1984년 영화 ‘범죄의 요소로 데뷔했다. 데뷔 당시부터 문제적 감독의 기질을 보였던 그는 끊임없이 잡음을 만들어내며 자신만의 시네마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1956년생인 그는 한국 나이로 치면 환갑을 훌쩍 넘겼다. 하지만 금기를 깨는 실험적 연출관과 빈틈없이 밀어붙이는 고집은 현재까지도 변함이 없다. 오히려 신작이 나올 때마다 논란의 중심에 서는 라스 폰 트리에는 여전히 문제적 감독이다.

‘범죄의 요소 ‘유로파 사진=‘범죄의 요소 스틸컷(위), ‘유로파 스틸컷(아래)

◇ 영화계 문제아의 등장, 초현실 스릴러 3부작

라스 폰 트리에의 데뷔작 ‘범죄의 요소는 ‘전염병(1988), ‘유로파(1991)로 이어지는 초현실 스릴러 3부작의 첫 단추를 꿰는 작품이다.

‘범죄의 요소는 종결된 줄로만 알았던 연쇄살인사건이 다시 발생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향을 찾은 형사의 이야기를 담았다. 형사는 범인을 추적하기 위해선 그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는 이론에 따라 범인의 행적을 밟아 상황을 재현한다. 하지만 어느새 범죄자와 닮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 영화를 통해 라스 폰 트리에는 일종의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던 본능을 마주한 주인공을 통해 인간의 기묘한 심리와 내면을 과감히 파헤친다. 또한 여러 영화적 기교를 선보이는 등 실험정신을 전면에 내세웠다. 붉은 황색 톤으로 충돌되는 이미지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낯선 기분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그의 실험성은 ‘전염병과 ‘유로파까지 이어졌다. 특히 ‘유로파는 컬러로 촬영한 뒤 필름을 흑백으로 현상해 조악한 질감을 완성했다. 초현실주의 특징 중 하나인 시공간의 파괴도 이 영화에서는 예사로 나타난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 사회의 혼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라스 폰 트리에의 초기작 ‘범죄의 요소와 ‘유로파는 칸 국제영화제 고등기술위원회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그는 단번에 문제적 감독으로 떠오르며, 주제적 측면과 기교적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다.

‘어둠 속의 댄서 스틸컷 사진=파인 라인 피쳐스

◇ 추악한 본성을 끄집어내고야 마는 집요함

신작을 발표할 때마다 수시로 논란의 중심에 서는 감독은 몇 명 없다. 라스 폰 트리에는 그 어려운 걸 거뜬하게 해내는데, 그 이유는 그의 영화가 매우 잔혹하고 컬트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라스 폰 트리에의 작품들은 욕망과 불안으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으레 가질 만한 윤리와 도덕성, 공감 등의 감정이 그의 영화에서는 손쉽게 무시된다. 그 대신,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며 편히 표출할 수 없는 불편한 감정들이 매 장면마다 버무려진다.

2000년 개봉한 영화 ‘어둠 속의 댄서는 뮤지컬 장르라는 외피를 입은 채 비관론적 시선을 견지한다. 라스 폰 트리에는 판타지와 경쾌한 뮤지컬이 미국 자본주의와 만나면 얼마나 끔찍해지는지 직접 드러냈다. 주인공 셀마(비요크 분)는 공장에서 일하는 형편이지만 끊임없이 뮤지컬을 연습한다. 그는 뮤지컬 속에는 끔찍한 일이 없어서 좋다고 말하지만, 라스 폰 트리에는 그런 셀마를 가차 없이 비극의 낭떠러지로 밀어버린다. 비록 주인공은 낙관할지라도 그를 둘러싼 세계는 비극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도그빌 스틸컷 사진=스폰지하우스

스타배우 니콜 키드먼 기용으로 이슈가 됐던 영화 ‘도그빌(2003). 파격적인 소재와 전개로 악명 높은 라스 폰 트리에와 할리우드 톱배우 니콜 키드먼의 만남은 매우 상징적이었다. 그리고 그에 걸맞게 ‘도그빌은 작품성과 화제성을 모두 챙기며 다시금 라스 폰 트리에의 명성을 드높였다.

라스 폰 트리에는 자신의 여타 영화들과 만찬가지로 ‘도그빌에서도 인간의 추악함을 끄집어낸다. 곤경에 처한 이방인 그레이스(니콜 키드먼 분)는 작은 마을에 숨어들게 되고, 주민들은 그에게 호의를 베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웃인 줄로만 알았던 사람들이 각자의 욕망을 표출하며 그레이스를 노동·성적 학대의 대상으로 삼는다.

‘도그빌에는 배려라고는 조금도 없는 사람들이 즐비하다. 이는 라스 폰 트리에의 연출 특징 중 하나다. 도무지 인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추악한 본능을 끄집어내고 역설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꼬고 꼬다가, 몰 때까지 몰다가 모든 걸 엎어버리겠다는 심산으로 사건을 터뜨린다. 이토록 적나라한 그의 이야기 전개 방식은 불편하면서도 묘한 찔림을 안긴다.

‘살인마 잭의 집 스틸컷 사진=엣나인필름

◇ 논란에도 불구하고 궁금해지는 신작, ‘살인마 잭의 집

오는 21일 개봉하는 영화 ‘살인마 잭의 집은 지난 2013년 제작된 ‘님포매니악 이후 라스 폰 트리에가 오랜만에 내놓는 신작이다.

이 영화는 살인을 예술이라 믿는, 광기에 사로잡힌 자칭 ‘교양 살인마 잭(맷 딜런 분)이 그를 지옥으로 이끄는 안내자 버지(브루노 강쯔)와 동행하며 자신이 12년에 걸쳐 저지른 살인 중 다섯 가지 중요한 살인 사건에 대한 전말을 고백하며 일어나는 일을 그렸다.

‘살인마 잭의 집은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상영 도중 100명이 넘는 이탈자를 만들어 화제를 모았다. 일부 관객에게 있어, 영화 속 어린 아이와 여성에 대한 지나친 살인 묘사 등이 거부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라스 폰 트리에는 줄곧 인간의 금기와 가식적인 교양 등에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그는 ‘살인마 잭의 집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여과 없이 담아내며 또 한 번 문제적 감독으로 떠올랐다.

‘살인마 잭의 집의 스릴러는 기존 스릴러 장르와 차별화됐다. 인간 내면에 대한 비판적 시선과 날선 성찰이 녹아들었다. 라스 폰 트리에는 이런 주제적 측면과 더불어 기술적 측면도 중요시하는 감독이다. 그는 관습을 탈피한 파격적인 기법과 고전 서스펜스물을 연상케 하는 전개로 관객들을 매료시킬 예정이다.

문제적 감독 라스 폰 트리에가 그린 적나라한 세계, ‘살인마 잭의 집에 방문할 시간이다. 김노을 기자 sunset@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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