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소녀의 눈으로 죽음을 응시하다…`제2의 백남준` 육근병 개인전
입력 2018-07-11 13:19 
서울 아트선재센터 영상설치 작품 앞에 선 육근병 작가. [사진 제공 = 아트선재센터]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3층, 어두컴컴한 전시장에 설치된 검은 흙무덤 위 까만 눈동자가 깜빡거리고 있었다. 마치 관람객의 내면을 꿰뚫을 것처럼 강렬한 눈빛이었다. 19세 소녀의 한쪽 눈 움직임을 촬영한 영상물이다.
중견 작가 육근병(61)은 이 외눈으로 1992년 독일 카셀 도큐멘타를 흔들어놨다. 한국인으로는 백남준에 이어 두번째로 참여해 차세대 비디오 아티스트로 주목받았다. 당시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 광장에 설치한 과감한 작품 '풍경의 소리+터를 위한 눈=랑데뷰'가 집중 조명을 받았다. 광장 한가운데 부풀어 오른 흙무덤 봉분을 세우고, 마주한 빌딩 입구에 대형 원주를 세운뒤 눈 영상을 설치했다. 각각 '동양의 눈'과 '서양의 눈'으로 명명했다.
카셀 도큐멘타 명당 자리인 이 광장을 두고 미국 유명 조각가 조나단 보로프스키와 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장소를 탐낸 보로프스키가 육근병의 명성을 트집 잡아 법원까지 갔지만 보로프스키 매니저가 먼저 포기해 분쟁 조정이 일단락됐다. 보로프스키는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에 설치된 조각 '망치질하는 사람'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아트선재센터에서 만난 육근병은 "세계 미술계에 미국 영향이 커서 한국인을 무시한 처사였다. 당시 나는 '철수하겠다. 대신 실망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결국 보로프스키 매니저가 '훌륭한 작가'라고 인정하면서 내 손을 들어줬다"고 말했다.

한동안 국내 활동이 뜸했던 그가 2012년 서울 일민미술관 전시 이후 6년만에 개인전 '생존은 역사다'(8월 5일까지)를 열었다. 26년전 카셀 도큐멘타 출품작(높이 6m) 절반 크기 설치 작품을 다시 내세운 이유는 뭘까. 변화보다는 진화를 더 좋아한다는게 그의 답변이었다. 변화는 변질될 수 있기에 자기 만의 작품 세계를 계속 끌고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래서 카셀 도큐멘타 설치를 기록한 드로잉과 1995년 프랑스 리옹비엔날레에 설치됐던 작품 '생존은 역사다' 드로잉도 내걸었다.
그런데 왜 30여년간 눈에 천착할까. 작가는 "눈은 마음의 창이며 우주와 인간의 축소체다. 언어를 통하지 않고도 눈으로 대화가 가능하다. 지난 시간도 쉽게 말해줘 시선을 조형적 언어로 선택했다"고 답했다.
이 눈으로 삶과 죽음, 역사를 응시했다. 3층 전시장에 놓인 테이블 위 육면체 상자 속에 담긴 근현대 전쟁과 재난 사진 60여개에 눈을 합성했다.
전시장 2층에 설치된 12채널 비디오 설치 작품 '십이지신상'은 근대사 변화의 중심에 서 있었던 모택동, 블라디미르 레닌, 체 게바라 등 12명의 초상을 담고 있다. 그들의 이미지가 사라지면 어린아이의 심장 박동 소리와 함께 깜빡이는 눈이 서서히 나타났다. 역사 속에서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눈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눈은 누구의 것일까. 작가는 "나이에 9자가 들어가는 여성들 눈만 찍는다. 특별한 의미는 없다. 아무래도 작업 초창기에 순수한 마음으로 접근했던 대상의 눈이 와 닿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일본 도호쿠예술대학 객원교수직을 내려놓고 작업에만 전념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전시이기도 하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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