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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올림픽] ‘4위’ 이승훈, 외로운 레이스는 멋졌다
입력 2014-02-19 01:15 
이승훈이 19일 오전(한국시간) 열린 2014 소치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m 경기를 마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러시아, 소치)=옥영화 기자
[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잘 달렸다.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후회없는 멋진 레이스였다. 열흘 전 구겨졌던 자존심도 회복했다. 4년 전 같이 그의 목에는 메달이 없지만 그는 세계 4위였다.
이승훈이 19일 오전(한국시간) 1만m의 레이스를 펼쳤다. 동계올림픽의 마라톤으로 비유될 정도로 힘겨운 레이스였다. 4년 전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1만m 금메달을 딴 그는 변함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이를 악물었다. 대회 전 그는 한국 선수단에 첫 메달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지난 8일 5000m에 출전했는데, 6분25초61로 12위에 그쳤다. 예상보다 낮은 기록이었다. 이승훈도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푹 숙였다. 뭔가를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다졌고, 그게 이번 1만m였다.
강한 자극도 됐다. 바로 앞의 6조에서 자신이 세운 올림픽 신기록(12분58초55)이 깨졌다. 요리트 베르그스마(네덜란드)가 12분44초45의 기록으로 14초10을 단축했다. 기록은 언젠가 깨지는 법이지만 눈앞에서 깨졌으니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더욱이 그의 레이스 파트너는 ‘괴물 스벤 크라머(네덜란드)였다. 크라머와 같이 달릴 때 기록이 저조하다는 징크스가 있었다. 메달 경쟁과 함께 징크스 깨기 등 할 게 참 많았다.
페이스도 좋았다. 이승훈은 초반 크라머의 뒤를 바짝 쫓았다. 순조로웠다. 중간 선두 베르그스마보다 기록이 빨랐다. 그리고 2800m까지는 크라머보다도 앞섰다. 이 페이스만 유지한다면, 페이스를 잘 조절한다면, 뒷심을 잃지 않는다면, 올림픽 2연패도 가능했다.
4000m 지점까지 크라머에게 추월을 허용했으나 1초도 차이가 나지 않았다. 앞서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에서 짜릿한 금메달을 땄던 터라, 또 한 편의 ‘역전 드라마가 연출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승훈의 레이스는 외로웠다. 크라머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페이스가 떨어졌다. 랩 타임이 점점 늘었다. 베르그스마의 기록과도 차이를 보였다. 금메달, 은메달은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동메달은 가능하리라 보였다. 3위 밥 데 용의 기록은 넘볼 것으로 여겨졌다. 8800m 지점까지 이승훈의 레이스는 동메달이 가능했다. 11분30초78로 데 용(11분31초62)보다 약 1초가량 빨랐다.
남은 3바퀴만 잘 돌면 됐다. 하지만 점차 늦어졌고 결국 데 용에게도 밀렸다. 그리고 4초49 늦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후회 없는 레이스였다. 최선을 다했다. 이승훈은 초반 크라머를 앞섰으며, 레이스 종반까지 네덜란드 3총사를 위협했다.
메달은 없지만 세계 상위 레벨의 실력을 선보였다. 세계 4위였다. 그의 뒤에는 10명의 선수가,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선수가 있었다. 무엇보다 열흘 전의 아쉬운 레이스를 털어냈다는데 의의가 있다. 포기를 몰랐던 이승훈의 레이스는 멋졌다.
[rok1954@maeky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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